무대 위는 흡사 거대한 성전. 그 앞으로 악마의 뿔을 단 관객들이 열광하며 몰려들었다. 엎드려 누운 사람 형상의 제단 위로 와이셔츠와 코르셋으로 멋을 낸 가수가 등장했다. 아담과 하와를 한몸에 담은 듯한 모습이었다. 17·18일 서울 방이동 K스포돔을 찾은 영국 가수 샘 스미스는 불경한 모습으로 성가를 불렀다. “성 소수자로 살아가며 가장 슬프고 못난 부분은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노래 ‘허팅’)이라던 스미스는 한 치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냈다.
샘 스미스가 한국을 찾은 건 2018년 이후 이번이 5년 만이다. 그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스미스는 2019년 커밍아웃했다. 자신을 남성도 여성도 아닌 논 바이너리라고 밝혔다. 그 전까지 스미스는 남성을 사랑하는 동성애자로만 알려졌다. 세상으로 나온 스미스는 자유로웠다. 원하는 대로 옷을 입고 내키는 대로 춤을 췄다. 그래서 손가락질도 받았다. 비만 혐오와 성 소수자 혐오의 협공이었다. 누군가는 스미스의 몸이 보기 흉하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것이 음란하다고도 했다. 한국이라고 예외였을까. 스미스는 ‘킹(열) 받는다’는 말로 희화화됐다.
하지만 스미스가 공연에서 속옷 차림으로 무대에 섰을 때, 1만여 관객은 일제히 열광했다. 몸이 근육질이 아니라며 비웃는 사람은 없었다. 몸짓이 충분히 ‘남성적’이지 않다며 조롱하는 사람도 없었다. 스미스는 ‘사랑’ ‘아름다움’ ‘성(性)’을 테마로 꾸린 이번 공연 마지막 장에서, 무대를 지옥 불구덩이로 만들었다.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고 흰 천으로 온몸을 뒤덮은 채 ‘찬가’(Gloria)를 부르더니, 순식간에 벌거벗은 악마가 돼 ‘휴먼 네이처’(Human Nature)를 이어갔다.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하는 스미스에게도 본성을 선언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휴먼 네이처’ 무대는 본능대로 살 스미스의 결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노래하는 스미스 곁에서 누군가는 돈을 뿌렸고 누군가는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잠시 후 내뱉은 날카로운 사자후. 각성한 스미스는 눈빛부터 달라졌다. ‘난 미안하지 않아. 이건 본성일 뿐이야.’ 불경해질 자유를 손에 쥔 스미스는 그래미 수상에 빛나는 히트곡 ‘언홀리’(Unholy)로 공연을 끝냈다. 온통 붉었던 무대엔 마침내 빛이 들었다. 하늘을 향해 손을 번쩍 치켜든 모습은 불온할지언정 당당했다. 후련했다.
이틀간 이어진 공연은 ‘19금’ 무대로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스미스는 화끈한 만큼 상냥하기도 했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불경스럽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스미스는 외면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스미스는 누구나의 친구였다. 스미스가 애절한 목소리로 ‘레이 미 다운’(Lay Me Down)을 부를 때, 관객들은 휴대전화 불빛으로 그의 외로움을 비췄다. ‘당신이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다른 누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겠나’(노래 ‘아임 낫 히어 투 메이크 프렌즈’ 내레이션)고 물었던 스미스는 공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자유를 얻어가길,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하길, 무엇보다 서로를 사랑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게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