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신입사원 송유찬(장동윤)은 일을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상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에게 일을 맡긴다. 쏟아지는 업무 요청에 유찬은 부대낀다. 평소처럼 야근하던 어느 날 가슴이 답답해 화장실에서 숨을 고르는데, 갑자기 바닥부터 물이 차올라 유찬의 숨통을 막는다. 그날부터 시도 때도 없이 발작이 벌어졌다. 혼자 영화관도 못 갈 정도다. 병명은 공황장애. 왜 주변에 알리지 않았냐는 질문에에 유찬은 답한다. “내가 내 정신 하나 제대로 컨트롤 못하는 나약한 놈으로 보이잖아요.”
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질환이 발병한 상태가 얼마나 ‘비정상’인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정신질환자의 심리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데 힘을 쏟는다. 정신병동 간호사로 일하던 정다은(박보영)은 남다른 라포(유대관계)를 형성한 환자가 세상을 떠나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땅으로 몸이 꺼지는듯한 무기력함은 바닥이 다은을 집어삼키는 장면으로 표현됐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위축된 김성식(조달환)의 심경은 유리 감옥 안에서 타인의 시선을 견디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드라마는 이밖에도 조울증, 망상, 조현병, 불안장애 등 현대인이 겪는 정신질환을 다루면서 “우리 모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이란 메시지를 전한다.
2021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할 만큼 정신질환은 흔한 질병이다. 그런데도 정신질환자가 비정상으로 낙인찍혀 사회로부터 배제된 데는 미디어의 책임이 없지 않다. SBS ‘괜찮아 사랑이야’처럼 조현병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고 평가받는 드라마도 있었지만, 조현병 환자를 살인범(MBC ‘검법남녀2’)이나나 테러범(SBS ‘황후의 품격’) 등 범죄자로 묘사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SBS ‘여우각시별’은 극 중 “상대는 조현병으로 의심되는 환자다.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대사를 내보내 질타받았다. 반면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질환자의 정서·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이면서 누구든 정신질환을 앓을 수 있고 누구든 이를 치료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작품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은 7일 서울 안국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을 만나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의 상태가 어떤지,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정신 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은 ‘네가 정신력이 약해서 그래’라며 손가락질받기 쉽다. 정신질환은 정신력과 무관한데도 이런 비난이 계속되면 자꾸 자기를 탓하게 돼 상태가 악화한다. 그런 인식이 달라지려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 감독 설명이다. 제작진은 의학 고증을 위해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에게 대본을 자문받았고, 촬영 현장에도 간호사들이 상주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작품은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다. 8일 기준 한국 TV시리즈 1위를 차지했다. “처음부터 환자인 사람은 없고 마지막까지 환자인 사람도 없다. 어떻게 내내 밤만 있겠나. 곧 아침도 온다”거나 “남들이 아무리 백조 같이 예쁘대도 자기가 싫으면 그만이다. 자기 좋은 거 마음대로 하는 게 행복이다” 같은 기능적인 대사도 시청자들 사이에선 ‘위안이 된다’ ‘치유력이 있다’ 등 호평을 받는다. 수간호사 송효신을 연기한 배우 이정은은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연기를 하면서 나도 힐링(치유)받았다”며 “흔히 정신병동을 공포스럽게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이 (정신병동을 찾는) 문턱이 낮아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