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이슈가 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增員) 방침은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 대학, 업종 모두 술렁이게 한다. 정책 결정때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목표 달성도이다. 의대 증원이 정책 목표에 부합하느냐를 따져보면 할지 말지, 얼마나, 어떻게 할지 등은 물론 정책의 성공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의대 증원의 목표(Official Goal)는 외과, 소아과 등 비(非)인기 필수과 전공의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지방 의료진 공백도 완화하겠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의대 증원을 늘리는 방식에서 현 정부와 과거 정부는 차별화 된다. 윤석열 정부는 기존 의과대학의 정원을 늘리겠다는 입장이고, 과거 문재인 정부는 공공의대 신설을 선호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대학병원 교수와 전공의들은 의료 질(質) 저하 등의 이유로 공공의대 신설에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현 정부는 ‘신설’보다는 기존 의대를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 정부의 이 구상이 앞서 말한 비인기 필수과목 전공의 확충, 지방 의료 공백 해소라는 목표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걸까?
필자가 보기에 이 방식으로만 정책이 추진될 경우 단순한 낙수효과만으로 목표를 달성할 확률은 낮아 보인다. 의대 증원으로 늘어난 의사들이 비인기 진료과를 택하거나, 지방 근무를 자원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에는 유인 효과가 더해질 때 사람이 몰린다. 정부의 지금 정책엔 의사를 끌어들일 만한 메리트가 약하거나 부재하다. 일정기간 의무복무 규정을 두더라도 그 이후까지 보장하기는 어렵다. 문제의 원점인 비인기 진료과 기피, 지방 기피를 뒤집을 정도의 동력이 추가돼야 할 것 같다.
먼저 비인기 진료과의 의료 수가를 올려야 한다. 비인기 진료과 의사에게 정부(국민건강보험공단)가 주는 진료비를 증액하면 일정부분 완화될 수 있다. 이 경우 늘어나는 재원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를 올리지 않고도 풀 수 있는 길이 있다. 국내 ‘빅 5’ 병원 등과 전문병원들에 일상화된 과잉 진료, 과잉 검사, 과잉 수술로 인한 지출을 줄이면 된다. 대형 병원이 양보할까? ‘의대 정원과 수가의 빅딜’을 통해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컨대 기존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이들 병원일 수 있다. 삼성병원, 아산병원과 교육 협력 관계에 있는 성균관대, 울산대 의대의 정원은 40명에 그친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의과대학 병원 정원이 100명 안팎인 점에 견줘 보면 왜소한 느낌마저 준다. 이번 의대 증원으로 대기업 설립 병원의 대학 정원이 상대적으로 많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 반면, 비인기 진료과 양산의 책임으로부터 이들 병원들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모태 기업들은 비영리법인인 병원에도 경영 진단과 컨설팅 등을 통해 진료과 별로 수익성을 분석하고, 의사에 대한 성과 인센티브제를 도입했다. 이런 민간 경영기법 도입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올려놓기는 했지만, 인기 과 줄세우기를 촉발한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다. 기업이 설립한 대학병원 중심의 수익성 제일주의, 가성비 우선주의 풍조는 과잉 진료, 과잉 수술이라는 폐단의 진원지일 수도 있다.
이번에 의대 증원은 해주되, 현재 드러난 문제해결을 위한 해결방안도 함께 요구했으면 한다. 이들 병원은 점진적으로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비급여 진료를 최소화하도록 하고, 정부는 대학과 병원 평가기준에 이를 포함시켜 가점을 주는 쪽으로 상호 협약을 맺으면 제도화의 길이 마련된다. 세부적인 내용을 더 추가할 필요도 있다. 이들 대형 병원에서 비인기 진료과 지망 학생에게 장학금이나 전공의 수련 과정의 혜택을 주는 건 어떨까? 또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인구 10만 이하의 지방 시‧군의 경우 고령자, 만성질환자를 돌볼 주치의가 절실하다. 기존 대학병원의 세분화된 수련체제로는 다소 거리가 있는 만큼 이들을 양성하는 과정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일이다. 최근의 ‘노년내과’와 같은 개념을 확산하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대 전형시와 일정 주기로 인적성검사와 다면평가를 도입, 강화하여 의료인으로 자질과 윤리검증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의대 증원은 어렵고도 오래된 숙제이다. 하나도 어려운데 더 복잡해지 않느냐는 논리로 ‘선(先) 증원, 후(後) 해결’이라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필요한 것을 받은 쪽에서 어려운 양보를 선뜻하기는 어려운 게 인간사의 이치다. 늘 업계에 주기만 했던 정부가 이번 의대 증원 문제에서는 ‘어음’이 아닌 ‘현찰’을 챙기는 주도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건강과 생명에 관한 의제들이 이권 다툼의 영역으로 강등되지 않고, 정책의 목표달성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