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수 겸 뮤지컬 배우 김준수는 모두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국내에 처음 선뵈는 한 뮤지컬 초연에서 새빨간 머리색을 하고 흡혈귀를 연기하겠노라 선언해서다. 왜 굳이 모험을 강행하냐는 염려가 쏟아졌다. 소속사 식구들까지 나서서 그를 만류했단다. 그럼에도 그는 확신을 갖고 이를 밀어붙였다. 11일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준수가 들려준 빨간 머리 드라큘라의 탄생 비화다.
김준수는 지난 6일 개막한 ‘드라큘라’ 10주년 기념공연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나 머리를 빨갛게 물들인 그는 극 내내 생동감 넘치게 연기한다. 김준수는 “‘드라큘라’의 매 순간에 내가 함께했다는 데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그의 다섯 번째 ‘드라큘라’다. 올해에는 유독 만감이 교차했다. 오랜 기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실감난 데다, 타이틀 롤을 맡은 주연배우로서 책임감 역시 커져서다.
모든 작품이 쉽지 않지만 ‘드라큘라’는 특히나 신경 써야 할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400살 먹은 노인의 모습과 젊은 드라큘라를 오가야 하는 만큼 고충도 여럿이다. 인간 아닌 흡혈귀임을 납득시키기 위해 걸음걸이부터 말투, 손짓까지도 세세히 연기해야 한다. 감정 연기와 노래 가창 난이도도 높다. 불러야 할 곡 역시 다수다. “배우로서 마음가짐을 남달리 가져야 하는 뮤지컬”이라는 설명이 잇따르는 이유다.
그 마음가짐 출발점이 빨간 머리다. 드라큘라가 조나단을 흡혈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의지로 시도한 빨간 머리는 어느새 김준수 표 드라큘라의 상징이 됐다. 극에서 노인이던 드라큘라는 그간 멀리 했던 인간의 피를 마시며 젊음을 되찾는다. 굽은 등이 펴지고 얼굴엔 생기가, 머리엔 붉은빛이 감돈다. 후드를 벗으며 드라큘라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대목은 ‘드라큘라’ 넘버를 작곡한 프랭크 와일드혼이 극찬하는 장면 중 하나다. 제작사 오디컴퍼니 역시 이번 10주년 기념공연을 앞두고 김준수에게 빨간 머리를 먼저 권했단다. 김준수는 “이 스타일링이 지금까지 사랑받을 거라곤 생각 못했다”면서 “관리가 힘든 만큼 다음 공연부터는 빨간 머리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같은 작품에 재차 임할 때마다 김준수는 부담감과 맞서 싸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바뀌고 진화하는 공연의 맛에 새삼 빠져든다. ‘드라큘라’는 초연과 그 이후 공연의 차이가 큰 편이다. 넘버부터도 ‘라스트 맨 스탠딩’, ‘쉬’, ‘노스페라투 레시트’ 세 곡이 추가됐다. 특히나 ‘쉬’는 김준수가 강한 애착을 가진 넘버다. 부르다 보면 “이 노래 없이 어떻게 ‘드나큘라’가 공연됐나 싶다”는 감상을 느낀단다. 그는 늘 변화에 적극적이다. 10주년 기념공연에서는 인간인 척하는 드라큘라를 상냥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흡혈귀가 되기 전 다정했던 본성을 보여주며 현재와 차이를 극명하게 하기 위해서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김준수는 여전히 많은 생각 속에 산다. 과거 그룹 동방신기 멤버였던 그는 “케이팝 스타가 전 세계를 호령하는 지금 시대에 동방신기로 활동했다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는 “돌아보면 뮤지컬 배우로의 전환은 전화위복이었다”면서 “뮤지컬은 과거와 지금 언제든 감사한 동아줄”이라고 했다. 뮤지컬 무대에서만 13년가량 활동한 그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대로 임해왔다”면서 “앞으로도 안주하지 않고 별 탈 없이,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로서 나아가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