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이 전공 구분 없이 신입생을 모집하는 무전공(자율전공)을 확대하는 구조조정에 나서는 분위기다. 교육부가 연간 수십억원의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다. 글로컬 대학 선정 때도 교육부는 학과 ‘벽 허물기’라는 과제를 추진하는 대학들을 대거 선정했다. 교육계에선 취업이 어려운 비인기 필수학문 전공은 사라 것이라는 위기감이 감지된다. 올해 고3이 되는 학생들의 입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무전공 확대 늘리는 대학가
최근 교육부가 내놓은 대학혁신사업 및 국립대학 육성사업 개편 시안(개편안)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이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서는 2025학년도 입학정원의 20% 이상, 2026학년도 정원의 25% 이상을 무전공 모집해야 한다. 국립대 역시 2025학년도 25% 이상, 2026학년도 30% 이상을 무전공으로 모집해야 한다. 개편안은 교육혁신전략 평가에 따라 올해 대학혁신지원 예산 8852억원 중 3540억원을 인센티브로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교육부가 대학들에 무전공 도입을 유도하는 건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도 교육부는 무학과·무전공·무학년 등 학문·학과 간 벽 허물기를 추진한 대학들을 5년간 1000억원을 지원받는 글로컬대학으로 선정했다.
무전공은 전공 구분 없이 1학년으로 입학한 뒤에 2학년 이후에 전공을 결정하는 입시형태다. 현재도 일부 대학에서는 자유전공학부 등의 이름으로 도입하고 있으나 전체 입학생의 1%가량에 그치는 수준이다. 교육부가 무전공에 유인책을 두는 것은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다.
서울대는 123명인 자유전공학부를 학부대학으로 개편, 신입생 400명을 무전공으로 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입학 정원 약 2600명 중 약 15%에 달하는 인원이다. 한양대는 정원 250명의 ‘한양인터칼리지’를 신설한다. 인천대는 입학 정원의 약 10%에 달하는 인원을 무전공으로 선발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고려대와 연세대, 성균관대 등도 무전공 입학생 선발을 위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 안 된 무전공…대학도, 수험생도 ‘대혼란’
대학들은 학생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무전공 확대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교육 현장이 변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시대가 융합 인재를 원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대학이 (무전공 등) 학제 개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학제 개편은 단순히 과를 분리하거나 합하는 등의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교육과정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 연구원은 “각 대학의 발전 계획과 환경에 따라 무전공 도입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취지와 달리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 여건 등을 마련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라고 분석했다.
지역의 한 국립대 교수도 “갑작스럽게 (무전공 확대를) 하는데, 사실 굉장히 허점이 많다”고 우려했다. 수도권의 한 국립대 교수도 무전공 확대를 급하게 추진하는 데 대해 “대학들이 위기의식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무전공 모집 확대 방안이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이과 통합형으로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체제에선 무전공 선발 확대가 이과생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인문·자연 통합 선발이 얼마 늘어날지가 핵심”이라며 “인문·자연을 통합 선발하는 자율전공학부(무전공)는 주목받을 가능성이 커 합격선이 높아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어 “자율전공학부가 얼마나 늘어날지, 그룹핑 학과가 어떻게 형성될지에 따라 전 학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2025학년도엔 ‘의대 입시’보다 더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수험생 입장에서도 입시 예측 가능성, 합격 가능성 예측 등 모든 것이 초기화되는 것으로, 이전까지 입시 결과 데이터가 완전히 뭉개질 수 있다.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가 (교육계에서)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지방대·기초학문 위기, 더 빨라진다
무전공 신입생들이 취업에 유리한 경영대, 공대 등 인기학과에 쏠리면서 비인기학과인 기초학문 등이 외면받아 사라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회장은 “인문 기초 관련 학과에 있는 현직 교수로서는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했다. 인천대 한 교수도 “사회나 철학, 자연계 기초학과 등 학생들이 ‘취업하기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는 학과들은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폐지된 학부제를 언급하며 “무전공을 확대하더라도 인문대와 자연대학 등 기초학문을 지원하는 사업, 안전장치에 더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90년대 도입된 학부제는 전공을 선택할 때 인기학과로 지나치게 쏠리면서 기초학문 존속이 위협받자 2008년 폐지됐다.
현재도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는 앞으로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임 대표는 “가뜩이나 힘든 지역 대학에게 자율전공학부 그룹핑을 해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를 나누라는 건 잔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방대가 수도권대에 비해 타격이 더 클 것인가’란 질문에 임 대표는 “그렇다. 치명상을 입는 학과들도 발생할 것”이라고 답했다.
국고 지원금이 한 푼이라도 아쉬운 대학 입장에서는 교육부가 내건 조건을 외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지방대 교수는 “글로컬 대학은 대학의 존립과도 관계가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무전공 추진을) 할 수밖에 없다”며 “사실 고민이 매우 많다”고 했다. 수도권 한 교수도 “대학 혁신 사업의 인센티브가 적지 않고 지원 예산과 연동되다 보니 대학마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