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였다. 집으로 도망쳐 벌벌 떠는데, 죽은 사람이 ‘죽일 놈’이었단다. 유일한 목격자는 입을 다무는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 다시 한번 손에 피를 묻혔다. 악몽이 이어진다. 우연일까 운명일까. 이번에도 죽은 사람에게 들키지 않은 죄가 있다고 한다. 2010년 연재된 웹툰 ‘살인자ㅇ난감’은 자신이 악인을 감별할 수 있다고 믿는 연쇄살인마 이탕과 그를 쫓는 형사 장난감의 추격전을 그린다. 맛에 비유하면 쓰고 떫은 한약 같다. 오는 9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살인자 ㅇ난감’은 다르다. 흑백에 가깝던 원작이 한층 컬러풀해진 모양새라 궁금증이 솟는다.
언론에 먼저 공개된 ‘살인자 ㅇ난감’ 1~4화는 카멜레온 같다. 시시각각 포장지를 바꾼다. 시작은 코미디에 가깝다. 주인공 이탕(최우식)은 한마디로 하찮다. 가족에게 워킹 홀리데이 계획을 털어놨더니 “딸기 농장으로 가느냐”는 빈정거림과 “그럴 거면 논산 고모네 딸기밭에서 따지”란 무관심이 돌아온다. 일상을 지루해하던 이탕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자신을 위협해온 취객을 우발적으로 죽인다. 범죄를 들킬까 전전긍긍할 때, 죽은 이의 생전 범죄가 세상에 까발려진다. 비슷한 일이 두 번 더 반복된다. 심지어 무작위로 납치한 검사마저 소아성애자였다. 이탕은 광기에 휩싸인다.
그를 쫓는 형사 장난감(손석구)은 감이 좋지만 지독히도 운이 없다. 악을 처단하는 일에 수상할 정도로 열정을 쏟는다. 불운과 과욕은 그를 위기로 내몬다. 이탕이 저지른 연쇄살인을 추적하며 폭력 수사를 벌이다 덜미를 잡힌다. 탕을 돕는 해커 노빈(김요한) 때문이다. 노빈은 ‘인간쓰레기’만 골라 살인하는 이탕에게 홀딱 반해 있다. 이탕이 악인을 골라내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믿는다. 1~4화는 흩어졌던 세 사람이 얽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5화부터는 전직 형사 송촌(이희준)의 활약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탕+노빈 vs 장난감’ 구도도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작품을 연출한 이창희 감독은 취재진에 보낸 편지에서 “기존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도와 형식을 통해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더 볼까
원작의 사건 진행을 흥미롭게 본 독자라면 원작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이탕과 장난감을 연기한 두 배우를 보면 단숨에 ‘이거지!’라고 생각할 만큼 원작과 싱크로율이 높다. 원작은 4컷 만화로 진행돼 그림체가 단순하고 컷 사이 여백이 많았다. 드라마에선 원작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여백에 핍진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다채로운 연출도 볼거리다. 이탕의 첫 살인과 과거사를 겹쳐 보여주는 방식이 색다르고 음악도 감각적이다. 노빈을 맡은 배우 김요한, 이탕의 첫 살인을 목격한 선여옥 역의 배우 정이서 등 신인배우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그만 볼까
원작의 쓰고 떫은 맛에 열광했다면 다소 김이 빠질 수도 있겠다. 원작은 이탕, 장난감, 노빈, 송촌 등 네 주인공과 살인사건 관련자들, 심지어 단역에게까지 꿍꿍이를 부여해 비릿한 느낌을 냈다. 등장인물마다 현실에서 볼 법한 추악한 이면을 가져 작품을 블랙코미디로 보게 했다. 드라마는 이탕과 장난감의 추격전에 더 관심을 둔 양상이다. ‘반전이 거듭될 수록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는 원작 웹툰 홍보문구가 드라마에도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원작보다 이탕의 과거사가 두텁게 나와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있다. 이탕이 고뇌하는 장면에 단역 배우의 신체 노출이 있으나 꼭 필요한 장면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