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말로 전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침묵할 수도 없는 것을 표현한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한 말이다. 그가 쓴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를 무대로 옮긴 동명 뮤지컬은 이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한다. 사랑과 분노, 갈망과 절망, 광기와 분노…. 차마 목구멍 뒤로 삼킬 수 없었던 감정이 선율을 타고 터져 나와 폐부를 찌른다.
배경은 15세기 프랑스. 파리는 격동을 앞뒀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자판은 종교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중이다. 학문과 사상은 성직자가 아닌 책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했다.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는 종교 개혁도 곧 벌어질 참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등장인물이자 해설자 노릇을 하는 그랭구와르가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라고 노래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작품은 격변하는 시대에 저문 두 남녀,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를 통해 휴머니즘을 역설한다. “신이여, 이 불행은 나의 잘못인가요” “사랑하고 싶어, 사랑보다 더 큰 사랑” 등의 가사로 자유와 평등, 박애를 노래한다.
콰지모도는 날 때부터 척추가 휘었다. 한쪽 눈과 한쪽 다리도 성하지 않다. 그는 노트르담 성장에서 종지기로 산다. 또 다른 주인공 에스메랄다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옮겨온 집시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궁핍하지만 자유롭게 산다. 작품은 에스메랄다를 향한 세 남자의 사랑과 집착을 그린다. 콰지모도는 자신에게 물을 준 에스메랄다를 사랑한다. 근위대장 페뷔스는 약혼녀 몰래 에스메랄다를 유혹한다. 부주교 프롤로도 신에게 자신을 바친 처지를 잊고 에스메랄다를 욕망한다.
작품은 얼핏 비극적 사랑을 다루는 것 같으나 뜯어볼수록 메시지가 깊다. 추함과 아름다움, 부유함과 빈곤함, 신성과 세속, 주인과 종 등 다양한 계층을 대비하며 불평등한 사회를 고발하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분열과 양극화가 심해진 사회라서일까. ‘노트르담 드 파리’는 도통 남 얘기 같지 않다. 콰지모도가 “신은 어디 있나요. 높은 교회인가요,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 곁인가요”라고 절규할 때나 “서로 고향은 달라도 모두 형제들”이라는 에스메랄다의 기도에선 콧날이 시큰해진다. 극으로 치닫는 감정은 음악이란 언어를 통해 더욱 풍성하게 전달된다. ‘노트르담 드 파리’ OST 음반은 출시 당시 1000만장 넘게 팔렸다. 대표곡 ‘아름답다’는 프랑스 음악차트에서 44주간 1위를 차지했다.
6년 만에 한국어 공연으로 돌아온 ‘노트르담 드 파리’는 공연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음악과 무용, 무대 연출이 조화돼 매 장면이 한 작품처럼 완결성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달리 프랑스 뮤지컬은 노래를 부르는 배우와 춤을 추는 배우가 나뉘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춤 전문 배우만 24명이다. 이중 두 명은 헤드스핀 등 브레이크 댄스를, 세 명은 아크로배틱을 담당한다. 아크로배틱 배우들이 종에 매달려 선보이는 퍼포먼스가 특히 압권이다. 각각 100㎏이 넘는 종을 맨몸으로 움직인다. 공연 제작사 마스트인터내셔널 측은 “배우들은 탄력성과 힘을 이용해 거대한 종 위에서 힘껏 발을 굴러 반동을 준다”며 “기술과 체력, 또 이를 캐릭터로 보여줄 연기력을 종합해 아크로배틱 담당 배우를 선발한다”고 귀띔했다.
노래로 대사를 대신하는 송스루 뮤지컬인 만큼 줄거리를 미리 알고 봐야 좋다. 가사에 담긴 은유를 곱씹고 연출의 상징을 추측할수록 여운이 길게 남는다. 배우 정성화, 양준모, 윤형렬이 콰지모도를 번갈아 연기한다. 윤형렬은 2007년 한국어 공연 초연 때부터 콰지모도를 줄곧 맡아왔다. 프랑스 오리지널 캐스트인 맷 로랑과 굵고 거친 목소리가 닮았다. 진중하고 무거운 캐릭터를 자주 연기해온 양준모는 ‘불공평한 이 세상’ 등 콰지모도의 고뇌를 담은 노래에서 빛을 발한다. 정성화는 감정 호소에 탁월하다. 에스메랄다 역엔 유리아, 정유지, 솔라(마마무)가 캐스팅됐다. 공연은 다음 달 2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이후엔 부산과 대구를 차례로 찾는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