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태어나고 싶어.”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주인공 강지원(박민영)은 긴 머리를 자르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이제 막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비유가 아니다. 첫 번째 인생에서 지원은 헌신하다 ‘헌 신짝’이 됐다. 남편 박민환(이이경)은 지원을 종처럼 부리다 못해 지원의 단짝 정수민(송하윤)과 불륜을 저지르고 심지어 암에 걸린 지원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첫 번째 생이 끝나가던 순간, 지원은 돌연 1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웹소설에서 TV로 이식된 일명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의 한 갈래다.
어쩌다 얻은 초능력…악당을 비웃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으며 승승장구 중인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한국 사회의 욕망을 반영한 ‘K’의 집약체에 가깝다. “현실의 절망이나 불가능을 과거로 돌아가서라도 바꿔보고 싶다는 열망”(오수경 칼럼니스트)이 반영된 회귀 설정은 지원에게 초인적인 힘을 줬다. 지원은 10년간의 기억을 간직한 채 회귀한 덕에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번다. 자신이 회사에서 낸 밀키트 기획안을 빼앗길 위기에서도 쉽게 벗어난다.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복수하려고 교사가 되고 불법 과외까지 겸하며 돈을 모아야 했던 넷플릭스 ‘더 글로리’ 속 동은(송혜교)과는 영 딴판이다.
얼떨결에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지원은 삶에서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자신을 망신 주던 수민의 콧대를 꺾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민환에게 “바람피운 새끼”라고 말하며 ‘싸대기 3연타’를 날린다. 이 장면이 담긴 10화는 드라마 방영 중 처음으로 시청률 10%를 넘겼다. 시청자들은 ‘도파민이 폭발한다’며 환호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실에서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회귀를 통해 강력한 힘을 얻은 지원이 시청자의 예측대로 복수를 행하자 쾌감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세계의 악당은 섬뜩하기보단 우습다. 수민은 민환과의 결혼식에서 친구들에게 망신을 당한다. 민환의 처지는 더하다. 회사에서 빨간 팬티를 머리에 쓰는가 하면 사채업자에게 납치당해 러닝셔츠 바람으로 의자에 묶이는 등 곤욕을 치른다. 오죽하면 민환을 연기한 배우 이이경의 은퇴설까지 거론될까. “기존의 복수극이 윤리적인 기준에 따라 악인을 처벌하는 데 주력했다면,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악인들이 자기 꾀에 넘어가 난처해하는 모습을 희화화하고 조롱”(김 평론가)한다.
지원의 복수는 쉽고 빠르며 고소하다. 작품이 향하는 곳도 정의 구현보단 ‘도파민 분출’에 가까워진다. 책 ‘드라마의 말들’을 펴낸 오수경 청어람 대표 겸 칼럼니스트는 “이전까지 사적 복수는 권선징악 형태를 띠었던 반면, 최근에는 보편적인 정의가 희미해지며 복수극도 사적인 정의를 구현하는 흐름을 보인다. 나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이 악인이고 내가 이것을 처단해야 한다는 식이라 우려스럽다”고 짚었다.
“축하해, 내가 버린 쓰레기 알뜰살뜰 모아 주운 거”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회귀 법칙은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민환의 어머니가 골라준 웨딩드레스를 입고 민환과 결혼해야 한다. 첫 번째 삶에선 그 ‘누군가’가 지원이었다. 과거로 돌아간 지원은 자신의 운명을 수민에게 넘기기로 한다. 수민과 민환의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를) 어머님이 골라주셨어?”라며 의기양양하게 웃는 수민에게 지원은 “축하해, 내가 버린 쓰레기 알뜰살뜰 모아 주운 거”라고 응수한다. 지원이 겪었던 불행은 이제 수민을 기다린다. 오 칼럼니스트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나타나는 복수는 내 불행을 남에게 전가함으로써 이뤄진다”면서 “그러나 드라마는 그에 대한 윤리의식을 제시하는 대신 두 악인을 반드시 처단해야 하는 절대 악으로 표현해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