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던 배우 박민영은 지난해 인생이 바닥을 쳤다고 느꼈다. 연인사이였던 강종현이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의 숨은 주인으로 알려진 데 이어 그 역시 부당이득을 얻어왔다는 의혹에 휩싸여서다. 모든 게 끝났다고 여기던 때 그에게 손 내밀어준 게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이하 내남결) 제작사 대표다. 정중히 고사했지만 거듭된 설득에 박민영은 강지원의 삶으로 뛰어들었다.
지난 15일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민영은 “가장 최악일 때 만난 작품으로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며 울컥해했다. 그에게 ‘내남결’은 배우 생활의 새로운 장을 열어준 전환점이다. 지난해 논란 이후 새해 첫날 방영을 시작한 이 드라마로 박민영은 재기 발판을 마련했다. 과거의 자신을 지우고 싶어 상징과도 같던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10년 동안 함께하던 스타일리스트 팀까지도 등졌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택한 결정. 그는 자신에게서 강지원의 흔적을 발견했다. 박민영은 “지원이는 나보다 더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면서도 “한 번의 실수를 되돌리겠다는 의지와 굳건히 살아야겠다는 독기만큼은 나와 닮았다”고 짚었다.
박민영의 독기는 극 초반부터 도드라진다. 시한부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체중을 37㎏까지 뺀 그는 이른바 ‘독기룩’으로 불리는 독특한 의상들로 입방아에 올랐다. 시상식에서나 입을 법한 드레스를 동창회에 입고 가거나 어깨를 훤히 드러낸 블라우스를 착용하고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두고 시청자 사이에서 여러 말이 나왔다. 박민영은 “스타일리스트를 교체한 결과”라고 해명하면서도 “김비서(tvN ‘김비서가 왜 이럴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싶어 시도한 결과물”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박민영은 지난해를 두고 “인간 박민영에게 큰 생채기가 생긴 시간”이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20년을 연기자로 살아온 배우 박민영은 떳떳하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더욱더 열심히 했다”고 힘줘 말했다. 수중 촬영도 대역 아닌 자신이 자처했단다. 말 그대로 “숨이 가쁠 때까지 연기”하다 보니 생각도 깊어졌다. 지금 그에게 새 삶이란 어느 때보다도 큰 의미를 가진다. 강지원처럼 새 인생을 살고 싶은 그는 강지원의 행복을 바라며 16부를 바삐 달려왔다. 박민영은 “‘내남결’은 완성도와 관계없이 잊을 수 없는 드라마”라면서 “배우로서 내 삶 역시 새로워지길 바란다”며 의욕을 다졌다.
“작년엔 자려고 눈을 감을 때마다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랐어요. 올해 본업에 복귀하며 비로소 내일을 다시금 꿈꿀 수 있었죠. 배우로 살아야 행복하더라고요. 평생의 업이라는 확신이 또 한 번 들었어요. 다시 신인으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할까요? 미국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는 꿈도 생겼어요. 로맨스는 많이 해봤으니 몸 쓰는 연기에도 도전할 거예요. 배우로 태어났으니 여러 가지를 해봐야죠. 이젠 다시 앞만 보고 달려갈 준비가 됐어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