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키오스크를 이용해 능숙하게 로봇 커피 머신을 이용하고 있었다.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표정에 긴장감은 없었다. 70~80대 노인들이 원형 탁자에 앉아 태블릿 PC를 보고 있었다. 은행 애플리케이션 사용 방법을 알려주는 노란 옷의 디지털 상담사도 중장년층이었다. 스마트폰 문자 보내기 수업이 한창인 강의실엔 89세(1936년생) 교육생도 있었다. 출입문을 나서는 중년 여성들은 “오늘 뭐가 제일 재밌었어?” “로봇이 타 주는 커피가 제일 신기했지”라며 소풍이라도 온 듯 들떠 있었다.
지난 2월19~21일 방문한 서울 대림동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 서남센터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장노년층 대상 디지털 교육 전용 기관이다. 노인들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눈높이에 맞춘 디지털 기기 사용 교육과 상담, 체험을 제공한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서남센터엔 하루 평균 약 200명이 이용하고 있다.
“잘 몰라서 미안해”…키오스크 사용도 용기가 필요
“키오스크로 열차표 예매하는 법도 여기서 배웠어요. 연습하면 생각보다 쉬워요. 밖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연습용 키오스크를 누르는 김형식(70)씨의 손가락에 자신감이 붙었다. 카드 투입구 위치와 방향을 헷갈려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열차표 발급까지 시간은 불과 1분30초. 기자가 하는 것과 비슷한 속도였다. 비법을 묻자, 김씨는 “몇 번씩 연습해봤다”며 허허 웃었다.
그러나 김씨는 아직 외부에서 키오스크를 사용해 본 경험이 없다. 긴장감과 서투름이 가장 큰 이유였다. “천천히 여유롭게 하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카페나 식당에선 뒤에 사람도 많고 심장이 두근거리니까 잘 안 돼요. 옆에 젊은 분들이 있으면 미안하지만 부탁해서 물어봐요. 노인들이 디지털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보니까. 그리고 좀 창피하다고 할까요. 새롭게 시도하기가 어려워요.”
디지털에 서툴러 미안함을 느끼는 건 김씨만이 아니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잘 사용하지 못해 다른 이에게 부탁하는 일도, 키오스크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해 줄이 밀리는 상황도 못내 미안하게 느낀다. 권모씨(85)는 회원가입과 절차가 어려워 매번 아들에게 온라인 구매를 부탁한다. 그의 수첩엔 “미안하구나, 아들아. 회원가입이 힘들다” “아이디를 만들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아들에게 보낼 문자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엔 전화나 문자 정도만 할 줄 아는 노인들이 주로 방문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려면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 서남센터에서 디지털 강사로 근무 중인 정은정씨는 “센터에 오시는 어르신들이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시는 것부터 정말 큰 용기와 열정이 필요한 일”이라며 “노안이나 영어와 같은 어려움까지 겪는다. 솔선수범해서 더 열심히 알려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랑방 된 디지털동행플라자…“우리 집 앞에도 생겼으면”
“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현장학습을 온 학생들처럼 노인들의 눈이 빛났다. 비슷한 또래의 디지털 상담사가 키오스크 사용법을 설명했다. 지난 20일엔 인천 한 교회에서 10명 남짓한 중장년층 이용객들이 단체 견학을 왔다. 버스까지 대절해 이른 아침부터 1시간30분이 넘게 달려왔다. 그럼에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설렌 모습이었다. “집에 가서 영수증을 보며 공부하겠다”며 키오스크 영수증을 가방에 챙기기도 했다.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는 이용자들에게 디지털 교육을 넘어 여가와 취미의 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날 가장 인기가 많았던 디지털 기기는 ‘인생네컷’이었다.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셀프 포토 부스다. “사진은 질색”이라던 어르신도 어느새 삼삼오오 모여 부스 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요즘에는 다 이렇게 찍는다”며 옆에 구비된 가발과 모자 등 소품을 서로 씌워주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장희영(60)씨는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걸 직접 해볼 수 있어 좋았다”며 “밖에서 몇 번 시도해 봤지만, 워낙 사람이 많아 항상 되돌아 나왔다. 여기선 마음껏 사진 찍을 수 있어 너무 즐겁고, 이 근처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씨는 자녀들에게도 사진을 자랑할 예정이라며 웃었다. 장선희(68)씨도 “로봇이 타주는 커피도 마시면서 편안하게 여유를 보냈다.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고령화 시대에 맞춰 이런 시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에 사는 허범철(73)씨도 일주일에 3~4번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를 방문한다. 스크린 골프와 바둑 로봇을 즐기려고 한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온다. 허씨는 “사람과 바둑 두는 게 더 재미있긴 하지만, 같은 급수의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라며 “로봇이랑 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대국이 가능해 좋다. 훈수 두는 사람도 없다”며 웃었다. 그는 “가끔 친구와 올 때도 있고, 혼자 온 사람들끼리 몇 마디 나눌 때도 있다”며 “집에서 무료하게 있는 것보다 나와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박은지 쿠키청년기자 apples2000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