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비만 유병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병원비 부담으로 인해 환자의 치료 접근성은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비만이 사회경제적 손실을 높이는 만큼 환자들이 체계적으로 치료 받을 수 있도록 급여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대한비만학회는 8일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비만 진료 급여화를 위한 건강보험정책 심포지엄’을 열고 국내 비만 치료 동향과 개선점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전문가들은 비만 진료, 검사, 약제 등에 건강보험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비만 인구는 최근 11년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2019년 국내 성인 비만 유병률은 36.3%로, 2009년에 비해 약 7% 정도 증가했다. 만성·중증질환 합병증 위험도 덩달아 높아졌다. 같은 40세라도 비만인 경우 당뇨 발생 위험은 5.1배, 심근경색과 뇌졸중이 생길 가능성은 1.7배 높았다.
비만에 따른 합병증 증가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불렸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평균 7%씩 늘었다. 흡연이나 음주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보다 크다.
허연 을지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 건강보험에서는 비만 대사수술을 제외한 모든 비만 진료·관리가 비급여로 제공된다”며 “고도비만 환자는 수술뿐 아니라 수술 전후 관리가 필요한데 고가의 비용으로 환자들이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수술 이후 치료비 부담으로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체중감량에 실패한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많은 환자들이 대사수술 1년 뒤 체중이 35% 감소되지만, 7년째에는 오히려 체중이 증가했다.
비만 대사수술 후 적정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문 의료진으로부터 영양과 생활습관 등에 대한 상담과 더불어 필요한 경우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모두 비급여로 이용해야 하다 보니 진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허 교수는 “기존 정책이 예방에 집중됐다면 앞으로 적극적으로 치료·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체계적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3단계 비만(체질량지수 35kg/m2)과 동반 만성질환이 1개 이상인 2단계 비만(체질량지수 30kg/m2), 대사수술을 받은 환자의 진료에 대한 보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원석 을지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도 진료 급여화를 통해 ‘건강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하위 소득 분위인 1사분위 비만율은 34.4%로, 소득이 가장 높은 4사분위(29.2%)에 비해 1.18배 높았다. 교육 수준별로는 초등학교 졸업 이하 그룹의 비만율이 45.6%로 대학교 졸업 그룹(29.5%)보다 1.5배 이상 높았다.
김 교수는 “비만 환자는 주로 낮은 교육 수준을 갖고 있거나 소득이 적은 취약 계층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며 “건강 형평성을 위해 국가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비만을 만성질환으로 분류하고 일차보건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급여 적용을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만 치료를 급여화하기에 앞서 대상과 적용 범위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구체적 급여 기준 근거가 필요하다”며 “대사수술 급여 논의 시 전후 관리가 빠진 이유가 무엇인지, 다른 만성질환과 비교했을 때 관리를 통해 기대되는 효과가 큰 것인지 등이 구체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가은 고려대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교수는 “국내 비만 치료가 미용 측면으로 관심이 집중된 만큼 재정 부담 등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통해 먼저 고혈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비만 평가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