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화호두과자 측은 오래전부터 창업주 고 조귀금씨가 일제강점기인 1934년 처음 고안한 것으로 주장해왔다. 천안시도 이를 받아들여 홍보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호두과자 원조설은 다음과 같다.
① 1983년 잡지사 뿌리깊은나무가 펴낸 <한국의 발견-충청남도>는 “광덕면의 호두를 원료로 식민지 시절에 일본 사람들이 과자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해방 뒤 이들의 기술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학화호두과자, 삼거리호두과자, 능수호두과자와 같은 공장들을 차려 계속 만들어 냈다”고 했다. 일본인이 시작한 호두과자를 해방 후 한국인이 이어갔다는 것이다. 이 부분 집필자 오현주 기자는 2년간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들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인이 만든 호두과자설’은 자취를 감추고 ‘1934년 조귀금 원조설’이 대세를 이뤘다.
② 2021년 10월 한 학술지는 “호두과자는 1931년 당시 천안에 거주했던 일본인 시무라(志村)가 운영했던 호두과자 상점이 전조선과자품평회에서 1등을 수상하면서 알려진 음식”이라며 <부산일보> 1931년 4월 12일자를 근거로 제시했다 (유춘동·김낙현, <한국문화> 8호).
③ 1931년 일본어 발행의 그 신문을 찾아보니, 천안역앞 시무라제과점 주인 시무라 마츠타로가 부산서 열린 전국과자·사탕품평회에서 구루미야끼(くるみやき)로 1등상을 탔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구루미야끼는 호두(구루미)를 구운(야끼·燒) 것으로 호두과자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④ 2014년 천안박물관 특별전서 일제강점기 천안역 음식점의 도시락 광고지가 관심을 끌었다. 이 광고지에 구루미야끼 홍보 문구가 실물 모양과 함께 실렸다. 과자품평회 1등상의 존재가 확인된다. 광고지는 장항선 노선도를 함께 실었다. 천안서 장항까지 철도가 개통된 것은 1931년 8월이다. 지금까지 글로 보건대 호두과자 원조는 일본인이 만든 구루미야끼다. 그런데 다음 글이 주목된다.
⑤ 인터넷으로 검색되는 ‘지역N문화-지역의 오래된 가게(천안 학화호도과자)’는 호두과자 기원과 관련, 앞의 글들과 사뭇 다르고 또 상세하다 (https://ncms.nculture.org/long-standing-shops/story/9214: 집필자 정윤화, 2022년쯤 작성). 간추려 보겠다.
금산 출신 조귀금(1915~1987)은 어려서 대전의 일본인 과자점에서 일했는데, 13살 때 주인이 일본으로 데려가 과자 기술을 익히게 했다. 1933년 귀국한 그는 심복순씨와 결혼해 천안으로 이사, 역앞 일본인의 ‘학화과자점’에 취업했다. 당시 천안은 구루미야끼가 명물로 떠오르는 때였다. 이 글에는 구루미야끼의 품평회 1등상과 천안역 도시락 광고지 내용도 나온다.
글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구루미야끼는 진짜 호두를 넣지 않아 화과자(和菓子)인 만쥬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런데 조씨가 그 과자점에서 외형이 호두와 똑같고, 호두 조각이 들어가는 호두과자를 처음 개발했다. 해방이 되고 그는 적산(敵産) 학화과자점을 인수해 본격적인 천안호두과자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결론은 조씨가 구루미야끼를 만드는 일본인 밑에서 일은 했으나, 지금의 호두과자 모양 금형을 고안하고 또 진짜 호두를 넣어 호두과자의 원조가 됐다는 것이다.
의문이 남는다. ①은 분명히 일본인이 호두를 원료로 과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붕어 안 넣는 붕어빵처럼, 호두 안 넣은 호두모양 과자를 판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③에 따르면 이 일본인은 연구열이 풍부해 호두를 이용해 다양한 과자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구루미양갱은 2등상을 탔는데, 호두 안 넣은 구루미야끼가 1등상을 탔을까. 원조 밝히기가 쉽지 않다.
/천안·아산 선임기자 chohp1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