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으로 패색이 짙은 상황. 단 한 번 남은 공격 기회를 살려야 한다. 희박하지만 상대 빈틈을 공략해야 역전을 노릴 수 있다. 그렇게 한 점 따라붙어 1-6, 이어진 만루 기회에서 싹쓸이 2루타를 때려 4-6까지 쫓았다. 이제는 홈런 하나면 동점이라 생각한 순간에 실제로 투런포가 터지며 6-6,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요기 베라의 명언이 떠오르면서 긴장감이 최고로 고조됐을 때, 갑자기 중계가 끊겼다. 공 하나에 승부가 갈리는 야구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계 실수였다.
티빙은 지난 24일 롯데 자이언츠와 SSG 랜더스 경기 9회초 도중 중계를 중단했다. 0-6으로 지던 롯데 자이언츠가 9회초 무려 6점을 내며 동점을 만든 직후 발생한 오류였다.
당시 롯데는 9회에만 6점을 뽑아내는 집중력을 선보였다. 9회초 1사 후 이주찬이 SSG 랜더스 최지훈의 포구 실책을 틈타 2루까지 진루했다. 후속타자 나승엽의 범타로 2사가 됐지만 이후 정보근과 박승욱이 연속 안타를 때리며 팀에 첫 득점을 선물했다. 이어 윤동희도 볼넷으로 걸어나갔고, 2사 만루에서 고승민이 싹쓸이 2루타를 터뜨렸다. 계속된 2사 2루에서 빅터 레이예스마저 투런포를 작렬하면서 6-6 동점을 만들었다. AI 승리 확률 0.1%에서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전준우의 볼넷과 최항의 우전 안타가 나오며 2사 1⋅2루로 기회를 이었다. 자연스레 야구팬들의 시선이 이 경기에 모였다. 롯데 자이언츠의 극적인 역전이냐, SSG 랜더스의 방어냐가 걸려있는 중요한 승부처였다.
이때 티빙은 중계 방송을 중단했다. 새로고침을 해도 ‘종료된 경기입니다’라는 알림만 뜰 뿐 경기 중계는 볼 수 없었다. 티빙은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자체적으로 중계를 끊었다.
SSG 랜더스 마무리투수 문승원이 4구를 던질 때까지 중계 오류는 수정되지 않았다. 야구팬들은 중계 오류 때문에 공 하나에 승패가 나뉘는 야구에서 무려 4구나 흘려보냈다. 갑작스런 중계 오류에 티빙으로 야구를 보고 있던 팬들은 “티빙 폼 미쳤다”, “욕 나온다” 등 티빙의 책임 없는 중계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앞서 티빙은 지난 4일 한국야구위원회(KBO)와 2024~2026 KBO리그 유무선 중계방송권 계약을 체결했다. 티빙의 유무선 중계방송권 계약은 3년 총 1350억원(연평균 450억원) 규모로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 유무선 중계권 금액이다.
기존 계약인 5년 총 1100억원(연평균 220억원)보다 연평균 금액이 2배 이상 증가한 초대형 규모 계약이자 프로야구 유료화 시대를 알리는 계약이었다. 당연하게도 야구 중계가 유료로 전면 전환되면서 기존보다 더 차별화되고 질 좋은 서비스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티빙은 시범경기부터 문자중계 시스템 오류를 냈다. 지난 9일 KBO리그 시범경기 문자중계에 선수들 소속팀이 바뀌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에 더해 문자중계 지연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볼카운트도 지속적인 오류 탓에 대부분 부정확했다.
문자중계 외에도 야구 관련 영상 문제점도 있었다. 경기 종료 후 4시간이 넘도록 하이라이트 영상이 게재되지 않았다. 또한 해당 영상이 티빙 공식 사이트가 아닌 유튜브에 올라가면서 이용자들의 불편함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내용의 부실함도 지적됐다. 주자가 먼저 베이스를 터치했다는 의미인 ‘SAFE’ 용어가 쓰여야 할 때 ‘SAVE’(마지막 투수가 경기를 효과적으로 마무리했을 때 부여하는 기록) 용어가 등장했다. 롯데 자이언츠 ‘프랜차이즈 스타’ 전준우가 ‘전근우’로 표기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티빙은 풀어준다던 저작권마저 제재를 가했다. 당초 40초 미만 쇼츠 영상은 저작권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발표했지만 갑작스럽게 저작권 위반으로 쇼츠 영상이 내려갔다.
쇼츠 영상 저작권 위반 경고를 받은 유튜브 관리자는 쿠키뉴스에 “영상 제재에 정말 당황했다. 유료화를 통해 영상 사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2차 창작에 대해 구체적인 가이드를 주지 않고 제재하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수많은 오류에도 팬들이 참은 건 ‘시범경기’였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은 정규시즌엔 이런 오류가 재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사상 최초로 야구 방송에 유료화가 시행됐는데 설마 무료보다 못하겠냐는 말마저 나왔다. 한 야구팬은 쿠키뉴스에 “정규시즌에는 금방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올 거라 믿는다”고 언급하며 나아진 티빙을 기대한 바 있다.
티빙은 지난 12일 ‘TVING K-볼 서비스 설명회’를 열고 “유료 중계가 무료보다 못하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인다”며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또한 야구 콘텐츠 편집과 제작을 담당하던 CJ올리브네트웍스와 계약을 파기하고, 기존 네이버 야구 중계에 참여했던 앵커와 새롭게 계약을 체결하며 개선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티빙은 정규시즌 개막 시리즈부터 야구팬들의 작은 믿음을 저버렸다. 원활한 중계 환경은커녕 오히려 중계를 끊어버리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시스템은 여전히 불편해서 티빙으로 중계는 보되, 문자중계는 네이버로 보는 상황도 다수 발생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티빙의 중계 행태를 비판하는 글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야구 팬은 “이럴 거면 중계권을 왜 샀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면서 “이미 기업 이미지 손실은 될 만큼 됐고, 야구팬들에게 쾌적한 중계 서비스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소위 ‘막장’ 서비스라고 질타를 받고 있는 지금의 중계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5월 유료화도 전면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솔솔 흘러나온다. 개막 이틀 만에 또다시 논란을 일으킨 티빙이 개선된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을지 야구 팬들의 눈과 귀과 쏠리고 있다.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