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힘든데...‘해’ 먹고 살기도 힘든 청년들 [쿠키청년기자단]

먹고 살기 힘든데...‘해’ 먹고 살기도 힘든 청년들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4-04-07 16:49:38
충청북도 충주 한 원룸에 사는 최세희씨의 부엌. 공간이 좁아 상부장이나 개수대 모서리에 자주 부딪친다. 최세희씨 제공

밥은 불평등하다. 식사 준비는 어느 주방에서나 고되지만, 좁고 불편한 원룸에선 유독 힘든 일이 된다. 원룸 거주자 대다수는 2030세대 청년이다. 주거생활 약자를 넘어 식생활 약자가 된 청년들의 주방을 들여다봤다.

신발장 위에서 만드는 한 끼

따뜻한 한 끼를 즐겁게 만들 수 있는 부엌을 바랐다. 대학생인 최세희(22·여)씨가 그리던 공간은 주방 시설과 꼭 필요한 가전이 한곳에 있는 모습이었다. 그의 집은 충청북도 충주에 있는 19.8㎡(6평) 분리형 원룸이다. 한 팔 길이 남짓한 개수대는 현관과 화장실 사이에 들어차 있다. 하부장 절반은 신발장이다. 가전은 자리를 찾아 집안 곳곳에 흩어졌다. 개수대에서 뒤를 돌면 1구짜리 인덕션이 협탁 위에 놓여있다. 방 안엔 냉장고가 있다. 주방, 현관, 화장실, 방이 한데 뒤엉켰다.

질서 없는 주방엔 있어야 할 게 없거나, 없어야 할 게 있다. 1구짜리 인덕션 위엔 후드 시설이 없다. 음식을 데우면 증기가 올라와 벽과 천장에 스민다. 군데군데 누런 기름때가 앉았다. 화장실 문을 열어 환기를 하지만 충분치 않다. 양념을 넣어두는 하부장엔 신발이 있다. 흙과 작은 돌이 쌓여있다. 신발에 붙어 들어온 벌레를 보기도 한다. 최씨는 부엌을 자주 쓸고 닦는다. “항상 위생이 걱정돼요. 부지런히 움직여도 구조 때문에 깔끔하게 살기 힘들어요. 남들보다 배는 신경 써야 해요.”

침대 모서리에 걸려 냉장고 문이 활짝 열리지 않는다. 냉장고 안을 닦으려면 몸을 구겨 넣어야 한다. 최세희씨 제공

치울 수 있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냉장고 안에 흘린 반찬 국물은 딱딱하게 말랐다. 맞은편에 있는 침대 때문에 냉장고 문이 선반을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열리지 않았다. 깊숙이 팔을 넣어 알코올을 부었다. 젓가락에 휴지를 감아 문질렀지만, 선반 틈에 스민 반찬 국물까진 어쩌지 못했다. “찝찝해요. 냉장고를 속 시원하게 닦고 싶어요. 그러려면 침대를 들어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일이잖아요. 애초에 침대를 움직일 공간도 없어요.” 최씨는 대신 냉장고 안에 붙인 탈취제를 자주 갈고 있다.

사람에게 향하는 칼과 불

직장인 심하연(26·여)씨는 적진에 들어가는 장수의 심정을 알 듯하다. 좁은 부엌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16.5㎡(5평) 분리형 원룸. 개수대와 가스레인지 사이에 한 뼘 정도 되는 조리 공간이 있다. 도마를 올리면 반은 개수대에, 반은 조리대에 걸쳐졌다. 칼질을 할 때마다 도마가 흔들렸다. 개수대 위에 떠 있는 부분을 잘못 내리치면 재료가 튀어 올랐다. 날이 손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칼 대신 가위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가스레인지를 쓰는 평범한 일조차 위기로 번지기 일쑤였다. 심씨는 1구짜리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조리대엔 라면 봉지를 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불이 봉지로 옮겨붙었다. 좁은 조리대에서 열기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불은 봉지만 태우지 않았다. 벽면에 발린 시트지는 열 때문에 검게 눌어붙었다. 가스레인지와 벽이 가까워서다. 불을 쓰면 음식 냄새와 시트지 타는 냄새가 함께 섞여서 났다.

“집 구할 때 매물을 많이 봤어요. 발품을 팔아서 방이랑 부엌이 나뉜 분리형 원룸으로 계약했어요. 원룸 중에 가장 좋은 조건의 집인 거죠. 근데 위험한 상황을 겪으면서 ‘좋아봤자 원룸 부엌은 이 정도 수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씨는 밥 한 그릇을 해 먹기 위해 위험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다.

14.8㎡(4.5평) 원룸(좌)과 112.4㎡(34평) 아파트(우) 주방. 사진=이은서 쿠키청년기자

좁을수록 오래 걸려, 원룸 부엌 반비례법칙


“음식 만드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겨서 진이 빠져요.”

좁은 부엌에서 지치지 않으려면 속도가 생명이다. 서울 중구의 16.5㎡(5평) 원룸에 사는 취업준비생 이래희(26·여)씨는 항상 시간을 줄일 방법을 고민한다. 손이 많이 가거나, 1구짜리 인덕션을 여러 번 써야 하는 음식은 선택지에서 뺀다. 단골 메뉴는 김치볶음밥이다. 재료를 넣고 볶기만 하면 된다. 이씨는 프라이팬 하나로 끝내는 원팬(One Pan) 요리를 자주 한다.

주방이 좁아질수록 음식 만드는 시간은 늘어난다. 실제로 112.4㎡(34평) 아파트와 14.8㎡(4.5평) 원룸에서 된장찌개와 계란말이를 만들어 시간을 비교했다. 들어가는 재료와 만드는 양은 같다. 그 결과 아파트에선 14분, 원룸에선 33분이 걸렸다. 약 2배 차이다.

무엇이 달랐을까. 14.8㎡(4.5평) 원룸에선 조리대가 좁아 재료를 한 번에 올리지 못했다. 냉장고와 하부장에서 필요한 식재료, 양념 등을 꺼내고 넣길 반복했다. 개수대엔 설거짓거리가 다 안 들어갔다. 급한 대로 조리대 위에 놓았다. 안 그래도 좁은 공간이 더 좁아졌다. 틈틈이 설거지를 했다. 1구짜리 인덕션엔 음식을 한 번에 올릴 수 없었다. 된장찌개를 먼저 끓이고, 계란말이를 부쳤다. 반찬을 만드는 동안 국이 차게 식었다.

반면에 112.4㎡(34평) 아파트 조리대는 여유로웠다. 재료를 다 올리고도 공간이 남았다. 중간에 냉장고나 하부장을 열 일이 없었다. 개수대는 원룸 주방의 약 3배 크기였다. 설거짓거리가 다 들어갔다. 넘치는 그릇 때문에 조리대가 좁아지지 않았다. 설거지는 밥을 먹고 했다. 3구짜리 가스레인지엔 된장찌개와 계란말이를 같이 올렸다. 국을 끓이느라 계란 물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아도 됐다.

14.8㎡(4.5평) 원룸 부엌. 자리가 없어 뒤집개와 젓가락을 개수대에 걸쳐뒀다. 사진=이은서 쿠키청년기자

집밥 빈자리, ‘맵, 단, 짠’이 채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룸 거주자는 간편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흔하다. 서울 노원구 23.1㎡(7평) 원룸에 사는 직장인 정하영(24·여)씨는 원룸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걸 포기했다. 대신 매일 배달 음식을 먹는다. 최소 주문 금액을 채우기 위해 식사량을 웃도는 양을 시킬 때가 많다. 식비가 70만원 가까이 나온 달도 있다. “애초에 음식을 하라고 만든 공간이 아닌 거 같아요. 사 먹는 게 마음 편해요.” 정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들이 집밥 대신 찾는 간편식은 대개 고열량, 저영양 식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0년 ‘가정간편식 영양성분 함량 조사’를 발표했다. 그 결과 가정간편식 식사류는 1회 제공량 당 평균 열량, 탄수화물, 단백질 등이 1일 영양성분 기준치에 비해 모두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게재된 ‘우리나라 국민의 영양문제 분석 및 정책제언’은 “영양불균형이 만성질환과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서 쿠키청년기자 euntto0123@naver.com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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