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당하게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하거나 적은 금액을 받았다는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보험금을 청구해도 보험사가 지정 병원에서 다시 의료자문을 받도록 가입자 동의를 구해서 보험금 액수를 줄이거나 지급하지 않는 일들이 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계단에서 넘어져 척추와 양손을 다친 A씨는 관절 장해 정도가 130%에 이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보험사가 진단을 믿을 수 없다며 제3자 의료자문을 요구했고 진단을 다시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해당 보도를 접한 누리꾼들은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너무 강요한다” “보험사 횡포에도 국가기관이 나서질 않는다” “의료자문은 보험료 미지급을 위한 수단으로 느껴진다” “보험사들은 진짜 보험이 필요한 분들한테는 잘 안 준다”는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의료자문은 보험금 지급에 대해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울 때 보험사들이 활용하는 제도입니다.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험금 청구가 과도하다고 볼 경우, 가입자에게 치료가 꼭 필요한지에 관한 진단 적정성을 의료전문가에게 묻는 방식이죠.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금 손해율을 줄이고 가입자들이 악용하는 걸 막는 제도지만, 가입자 입장에선 자신들이 처음 진단했을 때의 보험금보다 낮아지는 경우가 많아 분쟁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사실 가입자 입장에서 대처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가입자 입장에서 의료자문 동의를 안 하면 보험금 지급이 안 되고, 동의를 하면 보험사 쪽 병원에서 의료자문을 하니 불리한 결과를 받을 수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예를 들면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도 “수술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답변이 와서 입원 치료가 아닌 통원 치료비만 보험금을 지급하는 식입니다. 의사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어느 병원의 어느 의사가 진단했는지도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2021년 금융감독원과 보험협회는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심사 업무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하도록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안’을 마련했습니다. 보험사는 의료자문 결과만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지연해선 안 되며, 보험계약자 등이 제출한 의료기록 등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보험금 지급 심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여전히 보험사가 의료자문 병원을 지정하기에 보험사에 유리한 결과나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보험사의 의료자문을 거친 후 보험금을 받지 못하거나 줄어든 사례가 많습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손해보험사들의 의료자문을 통한 보험금 부지급률은 7.9%, 보험금 일부지급률은 23.6%로 나타났습니다. 보험금을 못 받거나 일부 지급 받은 전체 건수(1만2363건) 중 의료자문을 통한 건수(9773건)가 79%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편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의료자문 제도 문제점에 관한 지적이 나왔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부 보험사가 백내장 수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의료자문 제도를 부당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에 이복현 금감원장은 “보험사기 등에 가담한 경우에 대해선 엄정하게 대응하겠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청구했을 때 지나치게 불편을 겪거나 위법자로 지목되는 문제점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라며 “주된 민원이 되는 고령층에 대한 진료, 상급병원 진료 등 입원, 수술비가 많이 드는 항목에 대해선 보험금을 우선 지급될 수 있도록 연내 개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의료자문 제도를 둘러싼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지난 16일 39개 보험사 임원들과 간담회에서 ‘주치의소견 책임심사제’와 ‘의료정보 알리미 서비스’ 등 보험분쟁을 예방하는 모범사례를 공유했습니다.
주치의소견 책임심사제는 보험사와 소비자가 보험금 지급사유에 합의하지 못해 실시하는 의료자문 비중이 높은 도수치료와 요양병원 장기입원 치료를 대상으로 피보험자의 주치의 상세 소견을 근거로 의료자문을 생략하는 제도입니다.
피보험자를 직접 진료한 주치의 소견만으로 보험금 지급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것이죠. 또 손보협회와 보험사가 공동으로 핵심 의료정보를 사전에 제공하는 의료정보 알리미 서비스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