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위기를 바라보는 전산 전문가의 시선은 어떨까. 지난달 29일 서울 동대문구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원을 찾아 ‘대한민국 전산학 박사 1호’이자 성공한 ‘이과 침공’ 문과생 문송천 명예교수를 만났다.
문 교수는 “소프트웨어(SW)는 이과보다 문과 분야에 가깝다”며 한 손에 펜을 들고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정보기술(IT)은 크게 소프트웨어(60%)와 하드웨어인 반도체(40%)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SW는 데이터와 코딩이 각각 절반을 차지한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코딩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챗GPT 인기로 AI를 IT보다 큰 최상위 개념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지만 AI가 IT 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IT에서 하드웨어인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중 일부에 불과한 AI만 떠올리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문 교수는 대한민국 IT 소프트웨어 역사의 산증인이다. 고교 시절 문과로 철학을 사랑하고 법조인을 꿈꿨다는 그는 컴퓨터가 미래를 바꾼다는 기사를 접한 뒤 컴퓨터에 빠졌다. 당시 국내 유일했던 숭실대 전산학과 2기생으로 입학했다. 이후 카이스트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카이스트 교수를 지내고 2018년 퇴임했다.
특히 그는 정부가 반도체 강화에만 나서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긴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첨단 굴뚝산업 강국’이라는 의미다. 전 세계적으로 SW를 내세울 만한 국가는 미국뿐이다.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긴 AI ‘알파고’를 만든 영국 딥마인드도 있지만, 미국 구글이 인수했다. 반도체 강국인 한국의 SW 세계시장 점유율은 1%도 채 안 된다. 사실상 미·영을 제외한 국가들이 고만고만한 수준인 상태에서, 한국이 SW까지 개발한다면 IT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문 교수의 생각이다.
문 교수는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SW 산업을 키워야 한다. 예컨대 자동차의 경우 이제 전기자동차라는 전자제품, 컴퓨터가 돼 버렸다. 엔진보다 배터리가 중요해진 시대. IT산업도 마찬가지다”라며 “SW가 국가전략 산업이 돼야 한다. 반도체 산업만 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미국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들어줘야 한다. 반도체 공장 설비를 위해 해외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SW는 두뇌 산업으로 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SW 인재 강화를 위해선 인문계 출신 인재를 많이 길러내야 한다는 게 문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SW의 절반을 차지하는 데이터 부문은 이공계보다는 문과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논리력과 법칙을 기본으로 데이터를 구성하고 설계하는 능력이 문과적 소양에 가깝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데이터는 AI의 먹이”라며 “먹잇감 일부가 엉터리라는 것이 문제. 먹잇감인 데이터 중 절반(50%)은 엉터리다. AI가 이 데이터를 먹고 결과를 내면 50% 결과는 엉터리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것이 문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의 SW 역량을 키우기 위해 대학 교육 변화가 시급하다고 했다.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정부가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문 교수는 인문대에 소프트웨어 연계 전공을 개설하는 등 교과과정을 유연하게 만드는 대안을 제안했다. 철학과, 언어학과 등 인문계 학과에 ‘철학 전산’ 연구와 같은 과목을 개설하는 방식이다. 학생 수 부족으로 사라지거나 병합되는 전공 학과도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 교수는 “문과에서 배운 내용을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지 사회가 가르쳐 주지 않고, 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문과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라며 “데이터 설계도(지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4세대 나이스 등 공공 SW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문제를 바로 잡는데 문과 출신이 투입될 수 있고, 잘 할 수 있다. 선진국을 따라가기 위해선 실질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