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리던 일 중독자, 게임회사 CEO 지미(허광한)는 한순간에 모든 걸 잃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고민해도 답을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일본 출장을 떠난 그는 첫사랑의 기억을 따라가기로 한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여러 인연을 만나며 지미는 18년 전 추억에 서서히 젖어 든다.
영화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감독 후지이 미치히토)은 풋풋한 열여덟 첫사랑과 고민 많은 서른여섯의 고뇌를 동시에 그려낸다. 그로부터 생겨나는 공감대가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이다. 생동감이 넘치던 과거의 지미와 세파에 찌든 현재의 지미의 모습이 교차하며 이야기는 흥미롭게 이어진다.
대학 입학을 앞둔 여름방학, 열여덟 지미는 타이난의 한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연애에 대한 환상을 가득 안고 있던 것과 달리 현실은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 지미의 따분한 일상은 일순간 완전히 달라진다. 배낭여행 중 지갑을 잃어버린 일본인 여행객 아미(키요하라 카야)가 일자리를 구하러 오면서부터다. 슬램덩크 만화책과 게임 덕에 일본어를 할 줄 알던 지미는 아미와 어설프게나마 소통하며 그와 점점 가까워진다. 조금씩 사랑이 피어나는 지미와 달리 아미의 마음은 아리송하기만 하다.
18년 후 현재, 서른여섯 지미는 일본에서 아미의 흔적을 찾아 길을 나선다. 뚜렷한 목적지도 없다. 추억의 조각을 되새기며 그는 아미가 살던 일본의 작은 마을로 향한다. 이 여정 속에서 여러 기억을 되새기던 지미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제 인생에서 어떤 게 중요했는지를 하나둘씩 느낀다. 언제나 멀리 돌아가고 후회하던 지미는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생채기 난 마음을 다독인다.
두 시대를 다루는 만큼 공감할 여지가 많다. 윈도우 XP를 쓰고 일본영화 ‘러브레터’가 인기였던 시절을 경험했다면 마음이 일렁이는 대목이 곳곳에 있다. 슬램덩크 만화책이나 ‘러브레터’를 좋아한 이들에게도 반가운 장면이 여럿이다. 대만과 일본여행을 다녀왔던 이에게도 묘한 향수를 자극하게 한다. 목적 없는 여행이 주는 기분 좋은 막막함이 지미뿐 아니라 보는 이에게도 치유의 힘을 전해준다.
상영 시간 내내 허광한의 매력이 빛을 발한다. 치기 어린 열여덟의 어설픈 사랑을 표현하다가도 뒤늦은 방황을 시작한 지친 서른여섯의 모습을 막힘없이 보여준다. 사랑에 빠져드는 눈빛 연기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앞서 ‘상견니’와 ‘여름날 우리’를 통해 국내에서도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제 장기를 확실하게 뽐낸다. 키요하라 카야 역시 닿을 듯 닿지 않는 비밀스러운 소녀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없던 추억도 절로 생겨난다. 수채화 같은 사랑 이야기가 주는 몽글몽글한 감동을 가득 느낄 수 있다. 설익은 청춘의 사랑에서 돋아난 진한 여운이 오랜 시간 달갑게 남는다. 2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4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