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유방외과학회(ASBrS) 연례회의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40세 미만 여성의 3분의 1이 자가 진단으로 유방암 징후를 알고 난 후에도 진료를 받는데 1개월 이상 지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는 '젊은 여성 유방암 부담 경감(RUBY)'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5~2022년 1148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이루어졌다.
유방암 역시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선별검진과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한국유방암학회의 ‘2022 유방암백서’에 의하면, 선별검사 시 유방암 사망률을 15~30% 낮출 수 있기 때문에 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서양에 비해 폐경기 전 젊은 유방암 환자의 비율이 높은 편으로, 적극적인 자가 진단과 검진이 필요한 상황이다. 2022년 유방암 환자의 연령대별 진료인원 구성비를 살펴보면, 50대가 35%로 가장 많고, 20~40대(27%)가 뒤를 이었다.
장시간 주사 치료, 유방암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 키워
연간 약 8195억 원 손실 발생
사회‧경제 활동의 주 연령층인 젊은 층에서 유방암 환자 비율이 높다는 것은 사회적인 질병부담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유방암 치료 전 직장을 다닌 환자 86.8% 중 10명 중 9명은 치료 후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20~30대 환자 중 진단 직후 최초 6개월 이내 퇴사한 비율은 절반이 넘었다. 또한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의 사회경제적 활동 감소에 따른 생산성 손실 비용은 연간 무려 6억1000만 달러(한화 약 8195억35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유방암은 치료 과정에서도 사회경제적 부담을 높인다. 유방암은 2022년도 입원 진료 환자 수가 4만7055명으로 암종 중 1위를 기록했다. 더욱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진료비통계지표(진료일 기준)에 의하면, 2023년 상반기의 유방암 입원 진료 환자는 3만2003명으로 전년도 동기간 입원 진료 환자 수(2만9929명) 대비 6.93%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장기간 반복적인 치료에 따른 환자와 보호자의 부담도 크다. 전체 유방암 환자의 20~25%에 해당하는 HER2 양성 유방암은 예후가 좋지 않은 암종으로 장기간 반복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항암화학요법 약제들은 정맥주사로 투여하는데, 투약 및 관찰에 장시간 소요, 반복된 정맥 주사 투여로 인한 부작용, 의료 기관 및 의료 전문가의 시간과 자원에 대한 부담 등과 같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기존의 정맥주사는 3주마다 병원을 방문해, 1회 투여 시 투약 및 관찰에만 총 270분(4시간 30분) 이 소요되는데, 이는 환자와 의료기관, 의료 전문가의 사회경제적 부담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소이다.
기존 두 가지 치료제 성분 하나로 합친 피하주사제
환자 편의성 높이고 의료 시스템 개선에 기여
최근 기존의 정맥 주사를 피하주사제로 변경해, 기존 치료의 다양한 문제점을 극복한 치료제가 등장해 주목 받고 있다. 페스코(퍼투주맙/트라스투주맙)는 기존에 정맥주사로 투여하던 트라스투주맙과 퍼투주맙 성분을 피하주사제 로 제형을 변경해, 기존 정맥주사제와 비슷한 치료효과와 안전성을 가지면서도 편의성을 높인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제다.
피하주사제인 페스코의 가장 눈에 띄는 이점은 주사 투약 및 관찰 시간 단축이다. 페스코의 유지용량 투여 시 투약 및 관찰 시간은 총 20분(투여 시간 5분, 관찰 시간 15분)으로 기존 정맥 치료와 비교했을 때, 최대 90%까지 치료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이러한 이점을 바탕으로 페스코는 국내에서 2021년 항암제 최초의 개량생물의약품으로 지정된 바 있다.
치료 시간의 단축은 환자와 보호자의 시간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의료시스템 개선 및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부담 감소까지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이와 관련해 피하주사제(페스코) 항암 치료법 적용의 사회경제적 혜택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페스코가 이전 치료법인 정맥주사와 비교해 의료 시설의 자원 과부하 및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환자 삶의 질 개선 측면에서 유용한 옵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 기존 정맥주사를 피하주사제인 페스코로 전환하면 연간 의료기관의 경제적 비용을 최대 9만3455유로(한화 약 1억 4천여 만 원), 환자의 사회적 비용을 4854유로(한화 약 720만 원)를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시간적으로 환자는 1회 방문 시 병원 체류 시간 1시간 29분, 의료 시설은 1년 총 1100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이러할 경우에 의료기관에서는 최대 532건의 일반 항암 치료를 추가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피하주사제 확산… 의료 효율성과 사회경제적 효과 높은 ‘분산형 의료시스템’ 가능성 높여
페스코 사용이 확산되면 환자에게 폭넓은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으며, 병원 내 환자 밀집도 감소에 따른 추가 감염 위험 감소 효과가 있다. 이와 더불어, 환자가 치료 센터나 병원에 머무는 시간을 단축하고 외부 노출을 최소화해 연속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현재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은 페스코를 집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의료기관 또는 재택에서의 투여가 가능해, 분산형 의료시스템(Decentralised Healthcare)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유방암 치료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장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환자가 유방암 치료를 위해 3주에 1번 병원 방문으로 치료 여정이 길어지는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혈관 손상, 혈전 등 케모포트 삽입으로 인한 부작용 감소도 기대
페스코의 등장으로 기존 정맥주사 치료에서 케모포트 삽입으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 가능성 또한 크게 낮아졌다. 정맥주사 치료 시에는 혈관이 잘 보이지 않거나 약물이 정맥에서 주변 조직으로 유출될 위험이 있는 환자에게 중심정맥으로 약제를 안정적이고 간편하게 투입하기 위해 케모포트((chemoport)/ 피하로 삽입되는 쇄골하 중심정맥관의 일종)를 널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케모포트 삽입은 기흉, 혈흉, 심장눌림증(cardiac tamponade), 혈관 손상, 혈전 또는 색전증 등 드물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으며, 체내에 이물질을 삽입하기 때문에 주기적인 소독과 관리가 필요하는 등 환자의 불편이 따랐다.
미국, 영국, 유럽 등에서 급여 적용된 HER2 유방암 피하주사제… 국내는?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는 사회적 요구와 질환의 특수성을 고려해 유방암 치료 시 페스코에 대한 건강보험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페스코는 작년 8월 제6차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급여 적정성을 인정받았으나, 아직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상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