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융합형 인재 양성하려면 독서 토의 중요” [쿠키인터뷰]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하려면 독서 토의 중요” [쿠키인터뷰]

노라 뎀라이트너 미국 세인트존스 대학 총장

기사승인 2024-05-31 11:00:08
미국 세인트존스 대학 노라 뎀라이트너 총장. 사진=안지현 기자

미국에서 3번째로 오래된, 전공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똑같은 자유교양학사 학위를 받는 리버럴 아츠 칼리지인 ‘세인트존스 대학’의 첫 여성 총장 노라 뎀라이트너가 지난 25일부터 31일까지 한국을 다녀갔다. 뎀라이트너 총장은 방한 일정 중 강원 춘천시와 MOU를 맺고 ‘그레이트북스(Great Books)’ 시범 세미나에 참석해 토의 현장을 확인했다. 인천대 등 3개 대학, 민족사관고 등 2개 고등학교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대학 총장, 교장과 만나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29일 인천 송도동 인천대 학산도서관에서 뎀라이트너 총장을 만나 방한 배경과 세인트존스 교육과정을 한국형으로 개발한 인천대 GB프로그램을 살펴본 소회를 들었다. 이 대학은 별도 전공이 없이 졸업 때까지 1년에 25권(4년간 100권) 정도의 고전·명저를 읽고 토의하며 에세이를 쓴다. 토의를 통해 공감하고 생산적 탐구를 이어가는게 커리큘럼의 전부로, 미국 내에서도 특유한 수업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대에선 지난 2019년부터 세인트존스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만든 한국형 GB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해 진행 중이다. 뎀라이트너 총장은 한국 주요 학교와 대학은 물론, 지자체와의 교류를 통해 세인트존스식 커리큘럼을 한국에서도 키워나가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상위권 미 로스쿨과 세인트존스 대학의 교육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식 문답, 꼼꼼한 책 읽기, 좋은 대화 스킬, 정의·공정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 등을 한다는 점에서 다른 점은 없다고 봅니다.”

뎀라이트너 총장은 지난 2022년 세인트존스 아나폴리스 캠퍼스 총장으로 시작, 오는 7월1일 아나폴리스와 뉴멕시코 산타페 전체 총장에 오른다. 세인트존스에 오기 전엔 법학교수로 주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던 뎀라이트너 총장은 세인트존스 프로그램의 독창적인 교육 방식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세인트존스 졸업자는 미국 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미국 내 인문학 분야 박사생을 가장 많은 학교이며, 과학 분야를 포함해 다양한 범주의 박사학위 분야에서 상위 10% 안에 드는 대학이기도 하다. 뎀라이트너 총장은 “(오랜 기간 고전 읽기와 토의, 에세이 작성 과정을 거친) 졸업생들은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상대와 대화를 잘 한다. 다른 사람과 협업할 수 있는 사고를 가졌고, 창의적인 해결 방법을 제안할 수 있다”며 “특히 가장 중요한 스킬 중 하나가 질문의 근간을 꿰뚫을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스킬을 가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라 뎀라이트너 세인트존스 총장이 29일 인천 송도 인천대 학산도서관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안지현 기자

세인트존스는 규모는 작지만, 한국 학생들에게도 관심이 높은 해외 대학이다. 현재 세인트존스의 외국 학생 중 4분의 1이 한국인이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배경도 이 때문이다.

“인천대가 처음으로 한국에 GB센터를 세우고 GB 프로그램을 (여러 대학과 지자체로) 확산시켰어요. 춘천시에도 시행하고 있고요. 한국교육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 이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세인트존스 동문(인천대 이용화 영문과 교수)과 협업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또 (교류를 통해) 좀 더 많은 한국 학생과 미국에서 함께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현재 인천대 GB센터에는 세인트존스 학생 3명이 하계 인턴을 하고 있다. 올해 2학기에는 세인트존스 튜터(교수)가 인천대에 방문해 세미나를, 내년에는 인천대 교수가 세인트존스에 가서 1과목을 가르치는 인적 교환이 이뤄질 예정이다.

지난 26일 춘천시립도서관에서 열린 ‘GB 프로그램 시범 세미나’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현장 토의에 참관한 뎀라이트너 총장은 한국형 GB 프로그램과 세인트존슨 교육과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토의하면서 멈춰 생각하고, 시간을 들여 생각하는 것 모두 똑같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얻어가기 위한 토의였다”며 “한국 학생들도 굉장히 열정적으로 무언가 얻어가기 위해 배우려는 모습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뎀라이트너 총장은 GB 프로그램과 같은 고전·명저를 읽고 토의하는 교육 방식이 무전공 선발을 확대하는 한국 교육계 움직임에도, 글로벌 경쟁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세인트존스 학부생들은 수학, 과학, 문학, 음악, 언어학, 철학 등을 4년 내내 (고전과 명저, 실험으로) 다 들어야 합니다. 여러 학문을 공부하면서 싶은 대화를 하고 소통하죠. 학문은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은 대학에서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 됩니다. 세부적인 전공은 대학원 석사 프로그램에서 하는 것입니다. 한국 대학의 무전공 확대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너무 세분돼 있고 세인트존스는 그러한 교육에 저항하는 모델입니다.”

27일 오후 강원 춘천 시립도서관에서 열린 ‘세인트존스 대학과 함께하는 춘천시 그레이트북스(Great Books) 시범 세미나’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독서 후 토의하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한국 대학 위기에 대해선 “다양한 세대에 교육을 전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뎀라이트너 총장은 “미국도 대공항 당시 많은 대학이 위기였다. 세인트존스는 우리 학교만의 GB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많은 개혁을 끌어내면서 서서히 학생 입학률이 올라갔다”며 “당시 선도적으로 다른 대학이 잘하지 않던 시도를 많이 했다. 1949년에는 흑인 학생 입학, 1950년에는 여성이 최초로 대학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20대 초반 학생들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아야 한다. 세인트존스는 현재 고등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리더십 스킬을 배우기 위해 대학을 찾는 중년층, 지적인 대화와 깊이 있는 이해를 원하는 은퇴 이후 고령층 등 다양한 세대에 교육의 문을 여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고전·명저를 읽는 것이 발전하는 인공지능(AI)시대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뎀라이트너 총장은 “책은 굉장히 삶을 신나게 하는 것”이라며 “예컨대 소설은 픽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다른 세계에 살아보는 경험을 함으로써 공감력을 기를 수 있게 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고 현실에서 도피함으로써 상상력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상력은 미래 세대에 너무 중요한 능력”이라며 “현재 교육은 이러한 요구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가지 않고 있다”며 “숏폼을 오래 보면서 집중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능력을 되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과학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은 소통하고 어울려 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뎀라이트너 총장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과 대화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미래를 선도할 인재의 자질로 꼽았다. 교육은 이러한 자질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뎀라이트너 총장은 이 말 한마디를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인천과 춘천의 도서관을 다녀봤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도서관에 데려오고, 책과 만나게 해주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한국 교육(방향)은 지금 잘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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