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자 보험’ 경쟁 나선 보험업계…더 저렴하게, 더 넓게

‘유병자 보험’ 경쟁 나선 보험업계…더 저렴하게, 더 넓게

기사승인 2024-06-04 06:00:33
쿠키뉴스 자료사진

최근 보험사들이 인구 고령화에 맞춰 유병자(질병 경력이 있는 사람) 보험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갔다. 고객 몰이를 위해 손해보험사들은 가입자격을 높이는 대신 보험료를 낮춘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에 생명보험사들은 가입자격을 낮추거나 간편화해 맞대응에 나섰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KB손해보험은 지난달 3일 ‘KB 3.10.10 슬기로운 간편건강보험 Plus’를 출시했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진단받았지만, 비교적 증상이 경미해 투약이나 치료로 건강하게 관리되고 있는 유병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이다. ‘10년 이내 입원·수술·3대 질병(암, 심근경색, 뇌졸중) 여부’ 추가 고지를 통과할 경우 ‘초경증 유병자’로 분류, 기존 ‘유병자 3.5.5 간편건강보험’ 대비 최대 약 14% 저렴한 보험료로 가입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유병자 보험은 과거 3.2.5(△3개월 내 입원 및 수술, 추가검사 소견 △2년 내 질병이나 사고로 입원, 수술 여부 △5년 내 암으로 진단 및 입원, 수술 여부) 고지 상품이 출시된 이후 3.3.5와 3.5.5 등 고지 대상 기간을 점점 늘려왔다. 고지 기간이 늘어날수록 보험료를 내려 가입자를 유치하는 것이다. 이번 3.10.10 상품은 일부 담보의 경우 표준체 건강보험보다 보험료가 저렴하게 산출돼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금융당국은 보험료 산출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다른 보험사들도 10년으로 고지 기간을 늘린 유병자 보험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현대해상은 3일 ’간편한 3·10·10 건강보험’을 출시했다. ‘10년 이내 입원·수술·3대 질병, 5년 이내 6대 질병’을 추가로 고지할 경우 보험료가 기존 3.5.5 상품 대비 최대 약 30% 저렴한 상품이다. 메리츠화재도 같은 날 입원·수술 이력 10년 고지를 더한 ‘간편 3.10.5’ 보험을 출시했다.

생명보험사들은 가입 범위를 넓힌 유병자 보험을 속속 내놓고 있다. 한화생명은 2년 이내 암 병력이 없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한화생명 The H 초간편 암보험’을 지난달 3일 출시했다. 고지 의무는 ‘암으로 2년 이내에 진단·입원·수술·치료·투약 한 적이 있는지’ 단 하나인 점이 특징이다.

삼성생명은 과거 병력이 있어도 3가지 간편고지 항목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가입이 가능한 ‘삼성 인터넷 경증간편 입원 건강보험’을 지난달 13일 출시했다. 3가지 기본 고지항목은 △ 최근 3개월 내 진찰·검사를 통한 입원·수술·추가검사·재검사 필요 소견이나 질병확정진단 또는 질병의심소견 △ 5년 내 질병, 사고로 입원·수술 이력 △ 5년 내 암, 간경화증, 투석 중인 만성신장질환, 파킨슨병, 루게릭병으로 인한 진단·입원·수술 이력이다.

점점 고령화되는 인구구조가 보험사들이 유병자 보험 시장에 뛰어드는 근본적인 이유란 분석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3일 “국내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아픈 사람이 보험사의 고객이 된 것”이라며 “고혈압이나 당뇨 등 사망에 크게 영향이 없는 만성질환을 가진 고령자들이 많아졌다. 이들에게 보험료를 소폭 더 받고 보장을 일부 제한해 신규 계약을 유입시키는 것이 보험사 입장에서도, 고객 입장에서도 좋은 형태”라고 설명했다. 올해 발표된 제10차 경험생명표에 따르면 국내 인구의 평균수명은 남성이 86.7세, 여성이 90.7세로 5년 전보다 2.8세, 2.2세 늘어났다.

유병자 보험 시장의 경쟁 방식이 달라질 가능성에 대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는 고지를 중심으로 한 간편한 가입 절차를 내세우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다양한 보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유병자 보험이 간편 고지 항목을 몇 년까지, 몇 개나 하는지를 두고 벌이는 단순 경쟁”이라며 “앞으로는 보장과 상품의 다양화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보험사들이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거나 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분석하는 등 계속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병자 보험 상품이 활성화되도록 민간, 공공이 보유한 정보를 공유하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창욱 보험연구원 연구원이 지난해 6월 발표한 ‘디지털 전환 시대 보험산업 대응 및 감독・규제 방향에 대한 제언’에 따르면 미국 공공의료보험기관 CMS(Centers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는 데이터 공유시스템을 구축해 연구자 및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메디케어 가입자의 의료 이용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보건의료정보센터인 HSCIC(Health and Social Care Information Centre)도 보건의료 및 사회보장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보건의료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2020년 8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이 본격 시행된 이후 보건의료데이터의 산업적 활용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나, 개인정보 유출 및 오남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건강보험공단의 반대로 보험회사의 데이터 활용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실정”이라며 “고령자, 유병자에 대한 보험 편익을 증진시키고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통한 국민건강 증진을 유도하기 위해선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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