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한국이 떨어졌다고 K리그 재방송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기원이 ‘바둑올림픽’ 응씨배 중계를 예고 없이 돌연 취소하면서 바둑 팬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9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오전 11시30분에 시작되는 제10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 준결승 3번기 최종국 커제 9단과 이치리키 료 9단 대결을 한국기원이 운영하는 방송 ‘바둑TV’에선 중계하지 않는다. 커제 9단은 중국 일인자, 이치리키 료 9단은 일본 일인자로 세계 바둑 팬들의 관심이 모이는 경기다.
바둑 팬들은 “커제가 메이저 대회 V9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이치리키 료가 요다 노리모토 이후 28년 만에 응씨배 결승에 진출할 수 있을지 궁금한 대국인데 중계를 하지 않는다니 아쉽다”고 토로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공지 없이 준결승 중계가 취소되자 이에 대해 성토하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줄을 잇기도 했다.
한국은 응씨배 최다 우승국으로, 대회가 9회까지 이어지는 동안 단 한 번도 결승 이전 탈락은 없었다. 그러나 지난 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8강에서 한국 선수 중 홀로 남은 원성진 9단이 중국 셰커 9단에게 패하면서 36년 만에 처음으로 8강에서 선수단 전원이 탈락하는 참패를 당했다.
이에 대해 홍민표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은 쿠키뉴스에 “한국과 중국이 비슷한 전력으로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라고 설명하면서 “이번에는 깔끔하게 진 것을 인정하고, 다음 대회를 위한 준비를 더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 선수들의 기량이 한국에 비해 못하지 않기 때문에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의미다.
응씨배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함께 개최된 것을 시작으로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4년 마다 한 번씩 열렸다. 특히 40만달러(약 5억5000만원)라는 세계바둑대회 역사상 최고 상금 덕분에 바둑올림픽으로도 불린다. 한국은 88년 초대 대회부터 4회까지 한국 바둑 4천왕이 연속 우승(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하면서 이 대회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한국기원이 그동안 응씨배를 ‘바둑올림픽’으로 명명하며 홍보해왔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초 한국기원이 운영하는 바둑TV 편성표에는 응씨배 준결승 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이 8강에서 모두 탈락하자, 한국기원은 별도의 공지 없이 응씨배 4강 3번기 모든 중계를 취소하고 국내 기전 재방송을 편성했다. 이 과정에서 별도의 설명이나 공지가 없었다는 점 때문에 바둑 팬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한국기원의 ‘세계대회 패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월 메이저 세계대회인 몽백합배 결승이 중국 리쉬안하오 9단과 당이페이 9단 대결로 열리자 바둑TV는 해당 시리즈 전 경기를 중계하지 않았다. 당이페이 9단은 당시 한국바둑리그 명문 구단 한국물가정보 팀 소속 ‘용병’으로 출전하고 있어 팬들의 관심을 받던 선수였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기원이 CJ ENM으로부터 바둑TV 인수를 강행했을 때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면서 “바둑 보급을 기치로 내걸었던 초기 한국기원의 청사진 중 제대로 지켜진 것이 거의 없다”고 직격했다. 한편 한국기원은 바둑TV 편성표 변경 등 운영 관련 사안에 대해 별도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