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보고 있나요?
왜 보고 있지요?
무엇이 있나요?
어떤 생각하나요?
흔한 질문이다. 관심과 호감이 있어야 표현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저 질문에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사람마다 눈이 가는 방향이 있다. 눈이 가는 방향을 시선(視線)이라고 한다. 시선은 특정 존재에 관한 관심이나 주의를 말하기도 하고 존재와 자아를 잇는 선이기도 하다. 주변 사물이나 사람과 같은 실존적 객체에 대한 이해이다. 나아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주관적 감정이나 관념 등에 대한 생각의 선을 말한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니 시선이 현재에서 아주 가까운 과거로, 또는 먼 과거로 자주 이동한다. 가슴 아팠던 상처, 수치스러웠던 경험, 황당했던 사건 등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생각의 골짜기에 숨겨 놓았던 수많은 것들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성과 감정들 사이에 굵은 선을 만들거나 이윽고 선이 끊어진 채로 남기도 한다.
시선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1997년 대학 입학, 일명 IMF 타이틀을 건 대학생은 시대적 운명을 선택할 수 없었다. 급격히 어려워진 가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르바이트 학비 쟁탈을 위해 사회에 일찌감치 나가야 했으니 말이다. 학업과 반 취업 상태에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삶은 건조했고, 사회는 냉정하다 생각했다.
그 당시 유행했던 에쿠니 가오리와 히토나리가 교대로 연재했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게 되었다. 젊은이가 가져야 할 꿈이 사라졌던 시대에 냉정과 열정을 오가며 사랑과 인생에서 얼마나 감정이 중요한지 깨닫게 한 소설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준세이’와 ‘아오이’는 같은 시간, 다른 생각을 하며, 서로의 감정을 내적 선으로 연결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열정이면 다른 한쪽은 냉정을 오가는 사이에 서로는 애절했고 때로는 차갑게 인내했다. 서로에 대한 시선은 달랐지만,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여러분의 시선은 어떤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가.
시선은 관계로 이어진다. 사람은 관계없이 존속하기 어려운 존재다. 우리가 함께 했던 가족이나 이웃했던 인연, 내가 떠났던 사람과 스스로 떠난 사람들 사이에도 시선이 존재한다. 시선은 텔레비전 속 드라마 배우들에게 머물기도 하고, 유튜브 속 정치인과 견해를 같이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상생활 속 침대 아래 먼지나 소파 밑에 뒹구는 잊힌 빈 물병일 수도 있다. 또는 세상을 냉혹하게 인지하거나 따뜻하게 인지할 수도 있고, 무관심으로 방관하기도 할 것이다.
시선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시선은 선에서 면이 되고 부피가 되어 무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무게를 갖는다는 것은 가치를 갖게 됨을 의미한다. 따뜻한 시선 읽기는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는 치유가, 냉혹한 현실에서 소외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공감이 될 것이다.
여러분들의 시선은 몇 도의 온도를 갖고 있는가.
넷플릭스 1위를 섭렵한 드라마 ‘돌풍’의 박경수 작가는 ‘이미 낡아버린 과거가 현실을 지배하고, 미래의 씨앗은 보이지 않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오늘의 현실을 리셋하고 싶은 갈망에서 이 작품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속도감 있는 전개에 얽히고설킨 관계임에도 등장인물의 시작점은 비슷하다. 민주주의를 지향했지만, 달라진 상황과 관계 속에서 변절과 부패로 시선의 각이 커진다. 그리고 상대를 향한 시선의 온도가 차갑게 변한다.
시선은 삶을 지배한다. 그렇다면 사람과의 관계와 삶을 지배하는 시선이 좀 더 따뜻한 온도를 갖게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따뜻한 시선은 삶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에게도 사람다운 사람의 온도가 무엇인지 교육을 통해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공동체를 따뜻하게 해줄 구들장 아래 뜨거운 연탄 한 장 아닐까? 그리하여 따뜻한 시선은 뜨거운 가슴으로 이어져 공동체 삶의 온도를 1도 올리게 될 것이라 믿는다.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가?
어떤 시선에 지배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나의 시선의 온도는 몇 도인가?
앞으로 여러분과 나눌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