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 비해 공급이 마땅치 않은 루게릭병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여러 제약사들이 임상시험에 뛰어들고 있다. 잇따라 성과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아직 혁신적인 효능을 보인 치료제는 없는 상태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건부 허가를 이끌어낸 국산 치료제가 3상에 진입하는 등 학계가 주목하는 연구들의 결과가 기대를 높이고 있다.
루게릭병(근위축성측상경화증)은 근력이 약화되고 위축되면서 언어장애, 사지위약, 체중감소, 폐렴 등의 증세가 나타나다가 호흡 기능 마비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 질환이다. 전 세계 약 20만명의 환자가 투병 중이며, 국내엔 5000여명이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루게릭병은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다. 현존하는 치료제는 증상 악화를 늦추거나 수명을 수개월 연장하는 수준에 그친다. 치료 옵션도 적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허가를 받은 루게릭병 치료제는 ‘릴루졸’과 ‘에다라본’ 뿐이다.
최근 개발된 신약들도 기존 치료제의 미충족 수요를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지난 2022년 새로운 루게릭병 치료제로 떠오른 바이오젠의 ‘릴리브리오’는 FDA의 가속 승인을 받아 시장에 진입했지만 현재는 철수한 상태다. 후속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미비하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유럽의약품청(EMA)도 지난해 이 약물에 대한 허가를 반려했다.
바이오젠이 두 번째로 내놓은 루게릭병 치료제인 ‘칼소디’(성분명 토퍼슨)는 유전자치료제라는 점에서 기존보다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유전자 변이를 직접적으로 차단해 질병의 진행을 획기적으로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칼소디는 미국과 유럽에서 가속 승인 허가를 받아 놓았다.
그러나 이 역시 임상 3상에서 1차 평가 지표인 기능평가 척도를 충족시키지 못해 현재 후속 임상을 진행 중이다. SOD1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다는 한계점도 발목을 잡는다. SOD1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환자는 전 세계 루게릭병 환자의 2%인 7500여명에 불과하다.
아쉬운 연구개발 성과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의미 있는 임상 결과를 내보인 국내 치료제가 차기 루게릭병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코아스템켐온의 ‘뉴로나타 알주’는 중간엽줄기세포 기반 유전자치료제로, 2014년 식약처로부터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시판 후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뉴로나타 알주는 대조군 대비 생존 기간을 19개월 연장했고, 장기 투여에도 중증 이상의 부작용을 보이지 않았다. 현재 한국과 미국에서 임상 3상을 진행 중으로 오는 10월 투여 종료를 앞두고 있다. 내년 상반기 임상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의 기대도 높다. 안석원 중앙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는 “현재 루게릭병 치료제 중엔 증상 완화를 넘어 완치에 가깝게 질환을 개선시킬 수 있는 효과 좋은 약물이 없다”라며 “바이오젠이 개발한 유전자치료제는 임상적 증상이 나타나기 전 극초기에 진단해 바로 투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뉴로나타 알주의 경우 곧 임상이 종료되는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며 “임상이 성공할 경우 식약처 뿐만 아니라 FDA의 생물학적제제 허가를 동시에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 외에도 학계는 현재 진행 중인 임상들 가운데 SOD1 항체나 마이크로RNA(miRNA) 기술을 활용한 연구에 대해 기대감을 갖고 있다”며 “FUS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치료제 개발에도 관심이 크다”고 덧붙였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