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코로나19, 전쟁,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등 반복되는 경제 위기와 세대교체에도 불구하고 국내 식음료 유통 기업들은 ‘K푸드’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습니다. 불굴의 기업 모토로 굴지의 사업을 일군 대표 기업들의 경영 이념부터, 정도(正道)에서 시작된 ‘대박 상품’의 성공 스토리까지, 백년대계를 위한 남다른 땀방울의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
산업화가 본격화한 당시부터 우리 기업들은 국가 산업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식음료 유통 기업들은 배고픔에 시달리는 국민의 식생활 향상과 국산화 등을 목표로 올곧은 경영 이념을 보여주며 산업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국민의 식생활 향상을 꿈꾼 기업
1950년대부터 식음료 기업 중에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우리나라의 식생활을 바꾼다는 일념으로 사업을 시작한 곳들이 있다. 가난했던 시절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서 오늘날 대표 식품기업들이 시작됐다.
K푸드의 한 획을 그은 삼양식품의 창업자 고 전중윤 명예회장은 1960년대 초 남대문시장에서 미군이 버린 음식을 끓여 한 끼를 때우는 노동자들을 목격했다. 그는 식량난 해결과 인간의 존엄을 위한 방안으로 ‘라면’을 떠올렸다. 전 회장은 먹는 것이 족해야 세상이 평화롭다는 ‘식족평천(食足平天)’ 정신으로 대한민국 1호 라면 ‘삼양라면’을 선보였다. 삼양라면은 점차 국민의 입맛을 끌어당겼다. 정부도 1965년 식량 위기 해결을 위해 ‘혼분식 장려 운동’을 시행하며 삼양라면은 간편하게 영양을 챙길 수 있는 한 끼 식사가 됐다.
농심도 국민의 식생활 향상을 바랐다. 창업주 고 신춘호 회장은 ‘값이 싸면서 맛있고 영양가도 충분한 대용식’을 제공하자는 뜻으로 라면사업을 시작했다. 신 회장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전통 소고기국의 감칠맛을 구현한다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1970년 ‘소고기라면’을 세상에 내놓았다. 10%대였던 롯데공업의 시장 점유율은 22.7%로 뛰어오르며 성장의 불씨를 지폈다.
오뚜기의 창업정신도 식생활을 한층 끌어올렸다.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겠다는 함태호 명예회장의 생각은 우리가 평소에 먹는 오뚜기 카레, 진라면 등 식품부터 케챂·마요네스 등 대중화된 소스까지 이어졌다. 특히 분말카레 시장의 오뚜기 점유율은 83%에 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오뚜기 사시 ‘보다 좋은 품질, 보다 높은 영양, 보다 앞선 식품으로 인류식생활 향상에 이바지한다’에는 함 회장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기업
매일유업은 고 김복용 회장의 창업정신 ‘낙농보국(酪農報國)’을 바탕으로 유제품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1969년 유제품으로 국민의 건강한 삶을 만든다는 신념을 담아 시작한 사업은 공익적 가치를 강조했다. 국민에게 유제품을 공급해 식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황무지를 초원으로 만들고, 농가 소득기반 마련을 위한 원유 생산, 생산된 원유를 바탕으로 유가공 공장을 건설하는 등의 목적을 담아 ‘매일우유’를 탄생시켰다. 매일유업은 ‘새로운 식문화를 창조하며, 글로벌로 나아간다’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온전한 ‘한국 제품’을 바란 기업
제품의 국산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탄생한 기업들도 있다. 롯데칠성음료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는 1949년 12월 용산구 갈월동에서 빵·음료를 팔던 최금덕씨와 장계량씨가 남한에 내려온 평양의 금강사이다 공장장 출신 박운석씨를 만나 ‘순수 국산 음료수를 만들자’라고 뜻을 모은 뒤, 주동익·우상대·김명근·정선명씨와 합명회사를 차린 데서 시작했다. 이때 7명의 성이 모두 다르다는 뜻에서 사이다 앞에 ‘칠성(七姓)’을 붙이려다 영원히 번영하자는 의미에서 ‘칠성(七星)’으로 바꿨다고 전해진다. 현재 ‘칠성사이다’는 국내 음료 중 최장수 기록과 함께 현재까지 롯데칠성음료의 흑자를 유지해주는 대표적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미료 ‘미원’과 간장, 김치 등으로 잘 알려진 대상도 국산 제품을 바랐다. 대상그룹 창업자 고 임대홍 회장은 해방 후에도 일본 조미료가 우리 민족의 식탁을 점령하는 데 분노했다. 대상에 따르면 임 회장은 1955년 국산 조미료를 직접 만들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의 성분을 밝혀냈다. 국내로 돌아온 그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기업’과 ‘존중’이라는 이념으로 1956년 사업을 시작해 같은해 6월 국민 조미료 ‘미원’를 개발하며 국내 대표 식품기업으로 거듭났다.
이들 기업이 가진 각각의 정신은 국내 식음료 산업 성장의 촉매제가 됐다. 특히 기업들이 설립 이념을 토대로 이뤄온 성과는 식음료 맛·품질 발전을 비롯해 제품의 국산화와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가치를 창출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 생산 기업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기업정신을 지켜온 이들과 제품을 사랑해준 소비자들로 이뤄졌다”며 “다양한 제품과 산업 발전으로 소비자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