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참사로 ‘운전자 자격’에 대한 오래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이번 참사는 지난 7월1일 밤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200m가량을 최대 100㎞(추정) 속도로 역주행한 후 인도로 돌진하면서 벌어졌다. 이틀 뒤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택시 돌진 사고를 비롯한 70~80대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며 논의에 불이 붙었다.
정부가 발표한 고령자 면허 제한 정책도 힘을 받게 됐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은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조건부 면허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고령자의 이동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이 나오며 논란이 됐고, 정부는 하루 만에 고위험군에 연령대를 특정하지 않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면허 제한 논의에 앞서 어떤 사람이 ‘고위험 운전자’인지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릴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들면 인지기능이 저하돼 반응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이만을 기준으로 개개인마다 다른 신체 기능과 운전 능력을 무시하고, 면허를 제한할 순 없는 노릇이다. 국가가 이동권을 제한하는 만큼, 그 대상자를 선별할 검사 도구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
현재 운전자의 인지기능을 평가하는 도구로는 치매인지선별검사(CIST)가 쓰인다. 문제는 검사의 기준이 모호해 운전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이 검사 기준에 따르면 ‘100 빼기 7’의 답을 모르면 고위험군으로 판명된다. 오늘 날씨가 어떤지 정확히 대답하지 못 해도, 기억력이 나빠도 면허를 갱신할 수 없다. 이런 인지 기능이 운전 능력과 연관성이 있는지 밝혀낸 연구도 없다.
심지어 이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지 못해도 의사소견서만 발급받으면 되니, 큰 역할을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소견서 발급 역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현장에선 의사와 환자가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치매안심센터 의사들은 “생계가 달렸는데, 면허를 뺏어 가면 어떡하냐”는 어르신들에게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의학적 판단에 의해 ‘운전을 못 한다’고 진단해도, 매정한 사람이 되는 셈이다. “운전 안 할 테니 면허는 가져가지 말라”며 화를 내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제대로 된 기준 없이 ‘고령 운전자가 사고를 많이 내니 면허를 뺏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노년층은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대중교통이 열악한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에겐 면허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개개인마다 다른 신체·인지 기능과 운전 능력, 환경적 요인을 무시하고 면허를 제한하는 건 차별이자 행정편의주의에 가깝다.
내년에는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내년에는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가 498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2040년에는 65세 이상 면허 소지자가 1316만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히 고령이라는 이유로 국민 5명 중 1명의 면허를 강제로 제한하는 방식은 해답이 될 수 없다. 검사 도구의 정확도를 높여야 면허 제한 정책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