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년째 이어지는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료체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성공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전공의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상급종합병원을 중증·응급환자 진료 위주로 재편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를 위한 유인책과 기반이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8월 말쯤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방향 최종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중간발표 자료를 살펴보면, 우선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 등 숙련된 인력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진료공백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또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희귀질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응급, 심뇌, 외상, 고위험 분만 등 필수의료 분야를 강화하는 한편 일반병상은 최대 15%까지 줄일 방침이다. 중등증(중증과 경증 사이) 환자는 진료협력병원으로 보내고, 경증환자는 의원급에서 담당하도록 진료협력체계도 강화한다.
정부가 의료 현장 새 판 짜기에 나선 이유는 전공의 복귀와 신규 의사 확보가 난망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오는 31일까지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열어뒀지만 지원율은 저조할 것으로 보인다. 병원별 진료과목 교수들은 잇달아 성명을 내고 아예 채용 과정을 ‘보이콧’하거나, 지원자를 선발·교육하지 않겠다고 예고했다. 복지부 산하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정한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은 7645명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가 지난 19~25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의대 교수 3039명 가운데 50.2%(1525명)는 하반기 모집에서 전공의를 아예 뽑지 않겠다고 답했다. 하반기 모집을 통한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에 대해선 60.9%가 ‘필수, 비필수 가릴 것 없이 매우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공의들의 복귀 시점을 묻는 질의엔 49.4%가 ‘2025년 3월 안에 복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41%는 ‘내년에도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내년 신규 의사 확보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한국보건의료국가시험원의 의사 국가시험(국시) 실기시험 원서 접수 결과 졸업 예정인 의대 본과 4학년 3000여명 가운데 159명(5%)만 원서를 냈다. 재응시자와 외국 의대 졸업자까지 포함해도 접수율은 약 10%(346명)에 불과하다.
의대생들은 정부가 대학들의 요구에 따라 검토 중인 국시 추가 실기시험 실시에도 부정적인 반응이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29일 성명을 내고 “본과 4학년 졸업 예정자들이 국시를 보지 못하게 만들었음에도 추가 접수를 열겠다고 말하는 교육부의 태도에 학생들과 국민들은 모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며 “새로 접수가 열린다고 해서 학생들이 응시할 이유와 명분은 공허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전공의 인력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몸집을 키워온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바꿔 의료공백 우려를 해소해 나간단 방침이지만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를 띄운다. 이전 정부에서도 의료 현장 체질 개선을 위해 진료전달체계 개편 작업에 착수했지만 번번이 흐지부지됐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전문의가 되려면 의대 입학부터 전공의 수련까지 10년 이상이 걸린다. 세부분과 수련 과정을 마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 사이 정권이 바뀌면 연속적인 투자가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의료공백 사태가 해결돼도 정부 정책에 불신을 갖게 된 젊은 의사들이 앞으로 필수의료 전문의로 일할지는 미지수다.
대학병원들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변모하기 위해선 인력뿐만 아니라 재정도 뒷받침돼야 하지만 국립대병원들마저 운영자금을 차입해 사용하고 있는 처지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립대병원 10곳이 차입한 운영자금은 총 7615억원으로, 이 중 50.2%인 3824억5000만원을 지난 5월 말에 이미 소진했다. 차입 한도 초과 시점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 늦어도 9~11월에 차입한 운영자금이 대부분 소진돼 연쇄 도산에 빠질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고려대 안암병원장을 지낸 박종훈 고려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는 정부 계획대로 상급종합병원들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탈바꿈하려면 적어도 5~6년이 소요된다고 내다봤다. 박 교수는 “정부는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전공의가 하던 상처 소독, 수술실 업무 보조, 일반 처방약 오더 등 기본적인 일까지 전문의에게 맡기겠단 것인지, PA 간호사들이 대신하도록 하겠단 것인지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말은 전문의 중심 병원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기존 병원들과 무엇이 다른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경증환자를 안 보고 일반병상을 줄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줄어든 부분에 대한 보전 없이 통제부터 하면 병원들의 혼란이 극심할 것”이라며 “수가 조정을 위한 재정추계부터 정확히 한 뒤 중증질환 진료 수가를 지금보다 몇 배 올리는 등 제대로 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