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연일 애국가가 울리고 있다. 양궁 경기가 열린 파리 앵발라드 광장에서는 다른 나라 국가를 들을 수 없었다. 한국이 전 종목을 석권한 덕분이다. 대회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당초 목표로 했던 금메달 5개를 훌쩍 넘는 성과를 거뒀다. 이 정도면 엄살이 아니라 선수들의 땀을 신뢰하지 못한 대한체육회의 책임 회피용 예측이 아니었냐는 의구심이 든다.
7일 한국 대표팀은 ‘2024 파리올림픽’ 11일 차까지 금메달 11개와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를 수확했다. 2016 리우올림픽(9개), 2020 도쿄올림픽(6개)을 넘는 호성적이다. 2012 런던올림픽(13개) 이후 12년 만에 두 자릿수 금메달을 획득했다.
앞서 대한체육회는 이번 대회에서 ‘현실적인 목표’로 금메달 5개를 설정했다. 올림픽 100일을 앞둔 시점,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최근 추세로는 금메달 5개, 종합 순위 15위권 정도를 예상한다. 20위 아래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불길한 전망을 내놓았다.
금메달 5개가 예상이 아니라 목표라는 점이 더욱 충격이었다. 목표로 금메달 5개를 잡았다는 것은 실제 결과는 5개 이하일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이다. 한국이 스포츠 강국에 오른 1984 LA올림픽부터 지난 도쿄 대회까지, 금메달 5개 이하를 딴 적은 한 번도 없다.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에 그친 이후 비난 여론에 직면했는데, 올해 목표치를 당시보다 오히려 하향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대한체육회 예상을 비웃듯, 한국은 양궁 한 종목에서만 금메달 5개를 수확했다. 한국이 양궁에 걸린 금메달을 모두 획득한 건 2016 리우올림픽 이후 8년 만이다. 리우 대회에는 혼성 단체전이 없었다. 혼성 단체전은 2020 도쿄올림픽부터 생겼다. 한국 양궁이 시상대 맨 위에 5번 오른 건 이번이 최초다. 이외에도 사격(3개)과 펜싱(2개)의 약진이 돋보였다.
대한체육회가 얼마나 보수적으로 목표를 잡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처음 설정한 목표가 낮다면,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대한체육회가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목표를 낮게 세웠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참작할 여지는 있다. 여자 핸드볼을 제외한 구기 종목이 전멸하면서 파견 인원이 크게 줄었다. 21개 종목 144명으로, 48년 만의 하계 대회 최소 인원이었다.
다만 주요 종목은 굳건했다. 양궁은 여전했고, 사격은 올림픽 직전 주요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펜싱 오상욱과 배드민턴 안세영 등 해당 종목 최강자도 건재했다. 보수적인 목표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기량을 맘껏 뽐냈고, 소중한 금메달 10개를 품에 안았다.
2016 리우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이 계속 되뇌던 말이 떠오른다. 박상영은 결승전 패배 위기에 몰린 순간, “할 수 있다”고 계속 외쳤다. 간절한 바람대로 그는 대역전승을 거둬 펜싱 에페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포츠 정신 중 하나는 도전이다. 벽에 부딪히며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스포츠의 본질이다. 대한체육회의 앞선 예측에서 도전 정신은 찾기 힘들었다. 현실적인 목표를 언급하며 단 5개에 불과한 금메달을 면피용 목표로 내세웠고,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한체육회가 책임 회피에 골몰하기보다는 선수들의 땀과 열정을 믿고 더 높은 꿈을 갖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