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간식에 설탕 이렇게나?”…당류·나트륨 저감 정책 절실 [단짠의 배신④]

“아이 간식에 설탕 이렇게나?”…당류·나트륨 저감 정책 절실 [단짠의 배신④]

기사승인 2024-08-08 06:00:04
마라탕 후에 탕후루, 삼겹살 먹고 두바이 초콜릿, 치킨 뒤엔 망고 케이크. 오늘도 ‘단짠의 굴레’에 갇히셨나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성인의 하루 당 섭취량은 총열량의 10% 이내입니다. 하루에 2000㎉를 섭취하는 경우 일일 당 섭취 권장량은 50g입니다. 하지만 식사 후에 마신 연유라테 한 잔에 들어간 당이 무려 54g. 이러니 권장량을 지키기 쉽지 않죠. 후회 속에 철저한 식이요법을 다짐하지만, SNS나 유튜브에 올라오는 음식들을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당과 나트륨 섭취가 늘어 고민하는 건 개인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 정부들도 이 문제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20·30대 젊은 당뇨병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먹는 당과 나트륨이 어느 정도인지,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또 당국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전개하는지 살펴 5일부터 10일까지 엿새에 걸쳐 보도합니다. <편집자주>

과일꼬치에 설탕시럽을 입힌 중국 전통 간식 ‘탕후루’를 먹는 모습. 어린이, 청소년이 즐겨 먹는 간식인 탕후루에 함유된 당류는 14~27g에 달한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청소년들이 간식과 음료를 통해 권고 기준을 뛰어넘는 당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극적인 당류·나트륨 저감 정책은 물론 식습관 개선을 위한 영양 교육·상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볼 때 먹는데 어쩌나”…자녀 ‘단짠’ 간식 걱정하는 부모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1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을 분석한 결과, 어린이·청소년 3명 중 1명 이상이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권고 기준을 초과해 당류를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WHO의 당류 섭취 일일 권고 기준은 총 열량의 10%인데 6~11세 여자 어린이는 10.4%, 12~18세 여자 청소년은 무려 11.2%의 당류를 섭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식약처는 과자, 빵, 음료, 캔디 등 잦은 간식 섭취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스무디 한 잔만 먹어도 WHO 당류 섭취 권고 기준을 넘어서는 수준의 당을 섭취하게 된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지난 4~6월 영양성분 확인이 어려운 중·소형 커피·음료 전문점 스무디 93종을 분석한 결과, 스무디 한 컵에 들어있는 당 함량은 평균 52.5g(각설탕 17개 분량)이었다.

부모들에게도 자녀 간식에 들어간 설탕은 고민거리다. 10세 딸을 키우고 있는 한모(44)씨는 “아이가 등·하교하면서 스무디 한 잔씩을 꼭 사서 먹는다. 살펴보니 한 컵에 당류가 57g이나 들어있어 깜짝 놀랐다”면서 “아이에게 아무리 먹지 말라고 해도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먹을 정도라, 차라리 나라에서 규제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고 토로했다. 유모(48)씨도 “17세 딸아이가 매일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배달시켜 달라고 조른다”고 말했다. 그는 “탕후루, 두바이 초콜릿 등이 유행하며 달콤한 간식을 더 많이 먹는 것 같다”며 “먹지 말라고 해도 듣질 않는다. 단 걸 먹으면 건강에 위험하다는 교육을 학교에서 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 중소기업 식품제조업체를 대상으로 개발 지원한 나트륨 및 당류를 줄인 제품을 선보였다. 사진=김은빈 기자

어린이 당·나트륨 과다섭취 심각…“제도 개선할 것”

식품당국도 어린이 당류·나트륨 과다 섭취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박선영 식약처 식생활영양안전정책과장은 “현재는 학교 주변을 중심으로 고열량·저영양 식품 판매 제한을 하고 있는데, 최근 어린이 주 활동공간의 변화, 현장의 정책 수용도 등을 고려해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했다. 

식약처는 학원가 주변으로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을 확대하고, 건강하고 좋은 식품을 우선 선택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엔 학교 주변에서 고열량·저영양 식품을 팔지 못하게 하는 식이었지만, 최근엔 건강하고 좋은 영양 식품을 우선 선택하도록 이끄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나트륨·당을 적게 사용한 식품을 편의점에서 별도 진열·표시해 판매하는 ‘건강 먹거리 코너’가 대표적이다. 박선영 과장은 “시범사업 결과 코너에 진열한 제품이 다른 제품에 비해 30% 정도는 더 많이 팔렸다”라며 “어린이들이 더 건강한 제품을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덜 달고, 덜 짠 음식이 밥상에 더 많이 올라가도록 간편하고 접근성 높은 식품 개발도 지원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해 당류·나트륨 저감 식품 개발을 돕고 있다. 최근 ‘꾸브라꼬숯불두마리치킨’의 숯불데리야끼, 편의점 CU에서 판매하는 ‘The 건강식단 와사비크랩샐러드’ 김밥이 소비자들에게 큰 호평을 얻었다. 나트륨 함량을 각각 18.1%, 30%나 줄인 제품이다.

당류·나트륨 과다 섭취의 위험성을 알리는 인식 개선 사업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소비자의 인식을 높이면 섭취량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에서다. 실제 식약처가 저염 캠페인을 벌인 뒤 한국인 나트륨 섭취량이 크게 줄었다. 지난 2012년부터 ‘나트륨 저감화 종합계획’ 아래 저염 캠페인을 벌인 결과, 한국인의 하루 나트륨 평균 섭취량은 캠페인 시작 전인 2011년 4831㎎에서 2022년 3074㎎으로 36.3% 급감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생존 수영’처럼 ‘생존 영양’ 교육·상담 필요해

정부가 진행 중인 정책 외에 청소년이 올바른 식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영양 교육 등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현재 학교에서 실시하는 식생활·영양 교육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양 교육은 최근 의무화된 ‘생존 수영’처럼 필수교과가 아니라서, 제대로 된 세부 지침이 없다. 가정통신문만 보내는 학교부터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까지, 교육의 질적 수준이나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임상영양사로서 보건소에서 영양 상담을 하고 있는 이영은 원광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학교에서 영양 교육을 실시해 건강하게 먹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인식하면,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다만 영양 교육 몇 번 들었다고 해서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며 “영양 교육과 상담을 연계해서 장기적으로 생활 습관을 교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도 영양교육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대로 된 식생활·영양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성인이 되는 어린이들이 있다”며 “학교에서 체계적인 영양 교육이 이뤄지면 어린이의 식생활 안전 역량이 보다 효과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최근 청소년 당류·나트륨 섭취량 증가와 함께 비만 유병률 역시 크게 오른 점도 문제다. 질병관리청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고등학생 비만 유병률은 13.5%로 10년 전(5.6%) 대비 2.4배 늘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학교에서 영양 교육을 실시해 청소년들의 비만 유병률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제대로 된 영양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전문성 있는 인력 양성도 뒷받침 돼야 한다”고 전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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