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고 못 쏘네”…‘엄마 사수’ 금지현의 은메달 원동력은 ‘독기’ [쿠키인터뷰]

“애 낳고 못 쏘네”…‘엄마 사수’ 금지현의 은메달 원동력은 ‘독기’ [쿠키인터뷰]

특별했던 사격과 만남…“금 씨니, 사격부 해”
따가운 시선 극복하기 위해 “코치님이 말려도 연습했다”
파리 올림픽 은메달 공 돌려…“효진이, 대한이 고마워”
“최종 목표는 ‘최연소 지도자’…선수들 막아주는 방패되고파”

기사승인 2024-08-12 06:00:04
지난 8일 쿠키뉴스와 만난 금지현. 사진=김영건 기자

배 속에 아이를 두고 올림픽 쿼터를 지켰다. 출산 후 어쩔 수 없이 총을 내려놨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공백기를 극복해 대표팀에 합류했다. 파리올림픽 첫 메달의 주인공, ‘엄마 사수’ 금지현(24·경기도청) 이야기다.

쿠키뉴스는 지난 8일 울산에서 ‘2024 파리올림픽 공기소총 10m 혼성전’ 은메달리스트 금지현을 만나 대회 소회와 앞으로 각오를 들어봤다.

‘금메달 따려나’…특별했던 사격과 첫 만남

금지현의 사격 인생은 특이한 이름 덕분에 시작됐다. 중학교 2학년 때 체육부장을 맡았던 금지현은 사격부 모집에 얼떨결에 지원했다. 그는 “한 발씩 쏘라고 해서 그냥 쐈다. 결과가 엄청 안 좋았다”고 회상했다. 그때 한 친구가 사격부 구경을 가자고 제안했고, 그 길로 사격 매력에 빠졌다. 금지현은 “막무가내로 시켜달라 했다. 코치님이 ‘금 씨니, 금메달 따려나’하면서 사격부 지원을 받아줬다. 특별했던 시작”이라며 웃어 보였다.

대표팀에 합류한 것도 운이 따랐다. 2017년부터 태극마크를 단 금지현은 “원래는 대표팀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당시 4명을 뽑았는데, 5등을 했다”면서 “그때 4위 선배가 허리 부상으로 대표팀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차순위로 내가 입성했다. 거기서 선배들한테 밟혀 보고, 이기려고 발악하기도 했다. 그 경험 덕에 지금까지 버텼다”고 했다.

“도쿄 선발전 때 믿을 수 없는 ‘총기 고장’…파리행 티켓은 독기로 얻었다”

고등학생 금지현은 빠르게 주축 선수로 거듭났다. 2018 세계선수권 공기소총 10m 단체전 금메달, 2019 아시아선수권 2관왕 등 커리어를 착실히 쌓아갔다. ‘꿈의 무대’ 올림픽 출전도 눈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흔치 않은 ‘총기 고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금지현은 “도쿄 대회 1차 선발전에서 압도적으로 선두에 올랐다. 그런데 2차 때 총이 고장났다. 인정할 수 없었다”며 “수리 기간에도 총을 고치고, 또 쏘는 걸 5~6일 반복했다. 1분도 쉬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도쿄에 못 갔다”고 힘들었던 시절을 돌아봤다.

파리올림픽을 바라보고 연습에 매진하던 시점, 금지현에게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다. 금지현은 운동을 잠시 쉬기보다 자신을 위해, 또 태어날 딸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태교 겸 출전했다”던 금지현은 “총을 쏘면 몸이 흔들린다. 아기한테 영향이 갈까 봐 어느 정도 조심했다. 그래서 몸에 압박을 줄 수 있는 사격복 단추를 안 잠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출산 후에 슬럼프가 왔었다. 출산 전과 자세가 달라지면서 성적이 떨어졌다. ‘애 낳고 오니까 총 못 쏜다’는 말까지 들었다”면서 “죽어라 연습했다. 코치님이 말려도 쏘고, 또 쐈다”고 덧붙였다. 금지현은 따가운 시선을 극복하고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은메달을 딴 뒤 딸 정서아 양과 만난 금지현. 사진=유희태 기자 

고생 끝 따낸 값진 은메달…금지현의 농담 “효진이 때문에 힘들었어요”


생애 첫 올림픽에 나선 금지현은 박하준과 팀을 이뤄 공기소총 10m 혼성전 은메달을 따냈다. 당초 최대한과 짝을 이룰 예정이었으나, 메달을 위해 전략적으로 파트너를 바꾼 것이 주효했다. 금지현은 “공기소총 동료인 (반)효진이랑 (최)대한이에게 제일 고맙다”고 공을 돌렸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은 없었을까. 금지현은 “메달 색깔에 집착하는 편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1위가 힘든데,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어떻게 갑자기 금메달을 따겠나. 욕심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지현은 반효진의 응원이 유독 힘들었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는 “혼성전 때 응원석에서 효진이가 ‘(정)서아 엄마 파이팅’을 외치더라. 그 응원이 눈물 버튼이다. 효진이는 나한테 에너지를 주려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서 눈물이 고였다. 조준선이 안 보였다”면서 “어찌저찌해서 쐈는데, 하필이면 10.7점(만점 10.9점)을 기록했다. 잘 쏘니까 효진이가 계속 ‘서아 엄마’라고 응원하더라. 눈물이 차서 당황하긴 했는데, 점수가 잘 나와서 다행이었다”고 미소 지었다.

금지현의 최종 목표…“최연소 지도자 될래요”

금지현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묻자, 곧바로 “독한 선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금지현은 “후배들 앞에서 운 적이 많지 않다. 힘든 내색 한 번을 안 했다”면서 “사실 딸 낳기 전에는 연습을 적게 했다. 아이 출산 후에 연습 벌레가 됐다. 60~100발을 쏘면 연습량이 많은 건데, 나는 360발을 쐈다. 총 2000발을 혼자 쏜 적도 있다. 재능만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오로지 독기로 왔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금지현은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최종 목표를 전했다.

“대표팀 최연소 지도자가 꿈이에요. 선수들에게 억울한 상황이 많은데, 방패가 없으면 그 화를 모두 맞게 돼요. 날카로운 창은 못 돼도, 단단한 방패가 되고 싶습니다. 메달을 최연소로 따기에는 효진이가 있으니 안 돼요. 대신 ‘최연소 지도자’ 타이틀은 제가 얻겠습니다.”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
김영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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