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변화의 시대 앞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시대예보 송길영 교수의 ‘핵개인의 시대’, 경희대 김상균 교수의 ‘초인류의 시대’는 개인의 시대 도래를 예고한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앞에 세계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우리의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우리는 그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경제, 정치, 교육, 의료 등의 급격한 변화는 예측하기 어려웠고 변화의 속도는 가팔랐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마스크로 상징되는 사회적 거리는 인간과의 거리를 멀게 했다. 혼족, 혼밥, 혼놀 등 신조어가 등장했다. 가정에서의 소통은 부족해졌고, 교육은 비대면 수업이 활성화되면서 학력 격차는 더욱 양극화됐다. 고독한 개인은 경쟁 속에 스스로를 끊임없이 업데이트시켜야 하는 시지프스의 고단함을 짊어지게 되었다. 개인의 시대는 그렇게 성큼 우리 곁에 왔다.
10년 전쯤일까? 아이는 늘 배가 고팠다. 어머니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급식은 아이가 생존하는 유일한 성찬이었다. 아이는 하루가 멀다시피 밥과 투쟁했다. 밥을 두 번 세 번 먹는 일이 다반사가 되면서 급식실 영양사나 조리 종사원과 시비가 붙는 일이 많았다. 친구들도 불편함을 호소했다. 급식을 원하는 만큼 먹지 못하면 학교를 이탈하곤 했다. 덩치가 커다란 아이가 내 팔을 뿌리치며 교실을 나간다. 아이는 팔뚝으로 눈물을 씻어내며 등을 돌렸다.
아이의 그 모습은 교직에 임하는 내 자세를 180도 바꿔놓았다. 교장선생님과 급식실 등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자율 급식을 일부 시행하게 되었다. 밥과 일부 반찬을 자율 배식하면서 아이는 급식을 마음껏 먹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교실을 이탈하지 않았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친구들과 운동장을 누볐다.
졸업을 앞둔 아이는 나에게 엄마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었다. 갓 서른을 넘은 나이였기에 당황했지만 안심했다. 아이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를 단 한 번 엄마라 불렀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 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엄마라서 좋았고, 교사도 엄마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과거에 아이는 혼자였으나 아이는 학교와 함께 하게 되었다.
2014년, 충남교육청은 무상급식을 의무 교육 대상인 초·중학교까지 전면 확대했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급식비를 지원하면서 가정의 부담이 완화되었고 학생들은 동등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버릇이 생겼다. 점심시간에 밥을 굶는 학생이 있는가 살펴보는 일이다. 여전히 배고픈 학생들이 있다. 무상급식 이전에는 재정 부담으로 배고픔과 싸웠고, 무상급식 이후에는 혼자된 아이들이 고독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에는 급격한 변화 속에 무관심과 소외로 거리 두기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교육계에 당면한 큰 문제는 학력 저하와 교육격차였다. 그렇지만 나는 마스크 안에 가려진 아이들의 표정이 보고 싶었다. 아이들의 생각을 엿보고 싶었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견디고 있을지 조심스러웠다. 마스크를 벗고 밥을 먹을 때조차 불안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친구들과 마음껏 소통하면서 고민을 나누고 때론 소소하게 다투기를 바랐다. 그래야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당신의 아이가 혼자 있다. 당신은 아이를 혼자 두겠는가? 우리는 아이와 마주 앉아야 한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자. 점심시간 교실에 혼자 남아 자리를 지키는 아이에게 말을 걸자. 가정과 학교는 아이들이 핸드폰과 혼밥에 익숙해지기 전에 밥 짓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가정과 학교의 울타리에서 밥 한 끼, 대화 한 번, 웃음 한 자락 나눌 수 있는 동그란 밥상이 필요할 때다.
최배근이 지은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에서 초연결 시대를 이끌 사람은 ‘공감형 인간’이라고 했다. 변혁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니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며 아이들에게 고독한 성장만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공감과 지지의 힘은 더욱 절실해진다. 감정적 거리에서 소외된 아이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혼자서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질문해야 한다. 급속한 변화의 시대에서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아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공감, 경청, 연대, 지지와 같은 그 무엇이 굳건히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모든 아이의 엄마가 될 때이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냐고?
아이는 성인이 되자 헬스트레이너가 되었다. 금식과 단식이 일상인 직업을 택한 건 아이러니지만 많은 사람에게 건강과 행복을 주고 있다. 아이에게 아직도 나는 엄마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한 사람에게 한 공기의 밥과 같은 존재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뜨거워 줄 테니까.
◇이연정
이연정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는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02년 교직에 입문했다. 이후 아산교육청, 충남교육청 장학사를 거쳤다. 충남교사문학회 활동을 시작으로 현재 (사)한국작가회의충남지회 사무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회 온도를 1% 올리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치열하게 공감과 소통에 나서고 있다. 매달 한 차례 칼럼으로 만난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