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가운데 매년 수천억원씩을 들여 해외에서 백신을 수입하는 대신 국산 백신을 자체적으로 공급해 ‘백신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방학과 휴가철이 끝나는 8월 3~4주에 코로나19 감염 환자 수가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코로나19 오미크론의 신규 변이 바이러스인 ‘KP.3’이 유행하고 있다. KP.3 변이의 경우 기침, 몸살, 두통, 가래 등 일반 호흡기 감염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KP.3을 예방하는 백신은 현재 출시되지 않은 상태다. 방역당국은 의료 현장 차질 여부와 환자 발생 추이를 관찰하는 한편 기존에 운영하던 코로나 대책반을 확대 운영해 유행을 통제할 방침이다.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라 국산 백신·치료제 개발 필요성도 급부상했다. 현재 국내에 허가된 코로나19 치료제로는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정맥주사제 ‘베클루리주’(성분명 렘데시비르)와 먹는 치료제인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니르마트렐비르·리토나비르), MSD의 ‘라게브리오’(나파모스타트메실산염)가 있다. 유일한 국산 치료제인 셀트리온의 ‘렉키로나’(레그단비맙)는 지난해부터 생산이 중단됐다.
국내에서 접종하는 코로나19 백신 역시 외국 백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국이다. 백신 구매 비용은 비밀 유지 조항 때문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매년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코로나19 치료제 구매 예산은 3843억원, 올해는 1789억원이 책정됐다.
해외 국가들은 백신 주권 확보에 나섰다. 이미 일본 정부는 자국 업체들에 9300억원을 투입해 지난해 8월 백신 개발에 성공했고 접종을 시작했다. 백신 전문 기업인 SK바이오사이언스가 국산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 개발에 성공했지만 지금은 생산을 중단했다. 렉키로나와 마찬가지로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한발 늦게 백신 주권을 지킬 국내 제약사를 찾는 중이다. 정부는 메신저리보핵산(mRNA) 방식의 백신으로 다음 팬데믹에 대응하기로 결정하고 mRNA 백신을 독자 개발할 수 있는 제약사를 선별해 전체 임상시험 과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mRNA 백신은 신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단백질 또는 단백질 생성 방법을 세포에게 인식시켜 특정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때 우리 몸이 직접 항체를 형성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기존 단백질 백신과 비교해 바이러스 항원 배양 시간이 들지 않아 백신 생산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바이러스가 체내에 주입되지 않아 부작용 우려도 적다. 일종의 플랫폼 방식이기 때문에 항원 교체만으로도 백신 개발이 가능하단 장점이 있다. 코로나19 백신 가운데 모더나와 화이자 백신이 mRNA 방식으로 개발됐다.
질병청은 다음달 mRNA 백신 지원사업을 함께 진행할 제약사를 선정하기 위해 공고를 낼 계획이다. 이 사업은 오는 2027년까지 국산 mRNA 백신을 개발한다는 목표로 이달 말쯤 확정되는 예산안에 따라 동물·세포실험 등 비임상시험부터 환자 대상 임상 3상 시험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질병청이 후보로 꼽은 국내 제약사는 GC녹십자와 삼양홀딩스, SK바이오사이언스, 에스티팜 정도다.
GC녹십자는 지난해 3월 캐나다의 아퀴타스 테라퓨틱스로부터 mRNA 전달용 지질나노입자(LNP) 기술을 도입했다. 현재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 4가 mRNA 백신 후보 물질 ‘GC4002B’에 대한 비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미국 노바백스의 합성항원 코로나19 백신을 위탁생산한 경험이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는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과 mRNA 백신에 대한 연구개발(R&D)을 진행 중이다.
동아쏘시오홀딩스 계열사인 에스티팜은 이르면 이달 중으로 코로나19 mRNA 백신 후보 물질인 ‘STP2104’의 임상 1상 시험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삼양홀딩스는 약물전달시스템인 ‘센스(SENS)’를 자체 개발했다. 지난 4월엔 LG화학과 비독점적 기술이전 계약을 맺고 암 백신·치료제에 대한 공동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국산 코로나19 치료제 허가를 향한 국내 제약사들의 도전도 계속되고 있다. 신풍제약(치료제명 피라맥스), 일동제약(조코바), 현대바이오사이언스(제프티) 등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을 마친 국내 기업들이 추가 임상 적응증 확보, 국제 학술지 논문 발표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는 한국이 백신 주권을 이루려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백신·치료제 개발을 포기하지 않도록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감염병 특성상 갑자기 문제가 커졌다가 없어지기 때문에 백신을 만들어도 안 쓰게 되면서 그에 대한 리스크는 오롯이 기업이 떠안는 구조”라며 “감염병 유행으로 반짝 관심을 보였다가 사그라지면 지원을 끊는 일회성 조치가 아닌 긴 호흡을 갖고 지원할 수 있는 정책과 로드맵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계와 정부의 긴밀한 관계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정부 출연 연구소와 산업계 등의 여러 역할이 있었다”면서 “그 기능을 다시 재조명해 보면서 감염병 리스크 관리를 위한 중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