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드민턴은 파리 한복판에서 부활을 알렸다. ‘여제’ 안세영은 1996 애틀란타올림픽 방수현 이후 28년 만의 여자 단식 챔피언이 됐다. 2008 베이징 대회 혼합복식(이용대·이효정) 이후 금맥이 끊겼던 한국 배드민턴은 16년 만에 바라던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금메달의 영광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난 6일(한국시간)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 직후 안세영 입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안세영은 “내 부상은 생각보다 심했다.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에 많은 실망을 했다.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계속 가기 힘들 수 있다”고 국가대표 은퇴를 암시했다. 안세영과 대한배드민턴협회 불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안세영의 작심 발언은 거센 후폭풍을 불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논란이 일자 배드민턴협회를 상대로 감사에 착수했다. 대한체육회 차원의 대응도 있었다. 체육회는 안세영의 발언에 관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결승 때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한 안세영은 처음에는 2~4주 뒤 회복이 가능하다는 검진을 받았다. 하지만 재검진 결과, 해당 부상은 올림픽 전까지 회복될 수 없을 정도였다. 오진으로 인해 선수가 큰 피해를 본 셈이다. 안세영은 이번 대회에서도 부상을 안고 뛰었다. 부상 관리 측면에서 큰 실망감을 느낀 안세영은 이후 협회와 신뢰 관계가 깨진 것으로 알려졌다.
부상 관리로 촉발된 갈등은 대표팀 내 부조리한 문화, 복식 위주 훈련 방식, 스폰서 계약, 개인 자격 대회 참가, 포상 체계 등 대표팀 전반에 대한 큰 불만으로 이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안세영은 2017년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대표팀에 발탁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7년간, 안세영은 막내 신분으로 ‘악습’에 시달린 것으로 확인됐다. 선배들의 라켓 줄을 대신 갈아줬고, 청소나 빨래 등 잡일도 도맡았다. 안세영은 일과 후 휴식 시간은커녕 잡무에 시달렸다.
배드민턴화에 대한 마찰까지 있었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선수에게 장비 하나하나는 경기력과 부상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규정에 따르면, 대표팀 선수들은 공식 후원사인 요넥스 제품을 신어야 한다. 하지만 안세영은 요넥스 경기화에 불편함을 호소했다. 아식스 신발을 원했던 안세영은 규정에 막혀 요넥스의 미끄럼 방지 양말을 신는 것으로 합의, 이번 올림픽을 그렇게 치렀다.
안세영은 개인 스폰서를 막은 협회에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현재 나이키 후원을 받는 안세영은 정작 대회에는 요넥스 용품을 착용하고 있다. 배드민턴협회는 매년 약 40억원을 조건으로 요넥스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 계약에 따라 대표팀 선수들은 요넥스 유니폼, 라켓, 신발 등을 사용해야 한다. 안세영 입장에서는 개인 후원 브랜드를 경기 때 더 노출해 계약 규모를 키울 수 있으나, 규정 때문에 원천 봉쇄된 것이다.
협회는 안세영의 입장을 일부 반박함과 동시에, 지난 15일 변호사 2명과 교수, 이상순 협회 인권위원장과 박계옥 감사로 꾸려진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절차를 위반해 논란을 빚었다.
문체부는 16일 “배드민턴협회 정관은 단체 내 ‘각종 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사항’에서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배드민턴협회는 ‘협회의 장은 그 내용이 경미하거나 또는 긴급하다고 인정할 때는 이를 집행하고, 차기 이사회에 이를 보고해 승인받아야 한다’는 예외 조항을 활용해 진상조사위를 구성했다”면서 “진상조사위 구성은 결코 경미한 사항이 아니라는 게 문체부의 판단”이라고 규정 위반을 지적했다.
안세영도 같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유연하고 효율적인 지원이 이뤄지기를 원했지만 현실에서 맞닿은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해 크게 실망하고 안타까웠다”며 “협회 관계자가 변화의 키를 쥐고 있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행동해달라. 합리적인 시스템 아래에서 선수가 운동에만 전념하며 좋은 경기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안세영의 한 마디로 배드민턴계가 발칵 뒤집혔다. 안세영과 협회의 갈등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