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봉농협 등 양봉단체가 발급하는 ‘꿀 시험 성적서’가 판매업자들의 제품 안전성 인증 자료로 무단 활용되고 있어 소비자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수입꿀 통관검사 체계의 사각지대 해소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2일 현재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당근마켓 등 이커머스의 수입 꿀 판매 페이지에는 이 같은 양봉농협 자료들이 상당수 첨부되고 있다. 이들은 양봉협회·양봉농협 등에 검증을 받아 문제가 없다며, 베트남 수입꿀을 ‘고품질 꿀’로 홍보하는 근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한 베트남꿀 판매자 A씨는 지난 4월 한국양봉농협에 검사를 의뢰해 5월 중 받은 22개 항목에 대한 시험 성적서를 당근마켓에 게재했다. A씨는 판매 사이트를 통해 “식품의약안전처를 통해 정식 통관되고 농협에서 2차 추가 검사까지 받은 안전한 꿀”이라고 주장했다. 취재 도중 해당 게시물의 한국양봉농협 성적서 사진은 삭제된 상태다.
또 다른 판매자 B씨는 지난해 3월 한국양봉협회에 의뢰해 검사 받은 시험 결과 통지서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올렸다. 그러면서 “한국양봉협회에서도 천연벌꿀임을 인증받았다. 당당하게 검사를 통과했다”고 홍보했다.
이같은 상술에 소비자들은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온라인으로 꿀을 구매한 소비자 C씨(52)는 “인증서(성적서)가 있으니 믿고 산다”며 “요즘 가짜꿀도 많은데 하나라도 더 확실한 걸 보고 골라야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입꿀 판매업자들의 무차별적인 광고행위에 대한 정부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양봉단체의 시험 성적서는 홍보나 광고용으로 사용할 수 없음에도 소비활동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해당 성적서들은 국가기관에서 주관하는 것이 아닌 양봉단체가 양봉농가의 권익보호와 양봉업 육성을 도모하기 위해 항목별로 금액을 받고 시험해주는 성적서다.
이에 대해 양봉단체는 인력 등의 이유로 사실상 모든 게시물을 모니터링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국양봉농협 경제사업부 관계자는 “샘플을 보내올 경우 항목별로 비용을 받고 검사하고, 샘플을 받을 시 시료명은 의뢰자가 원하는 이름으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판매자들의 성적서 게시에 대해서는 “알고는 있지만 어디에 (성적서가)올라왔는지 바로 알 수 없고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모니터링이나 전화 요청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성적서에 시험목적 이외 영업·광고·홍보 등에 사용할 수 없다는 문구를 게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한국양봉협회의 권태용 양봉산물연구소장은 “판매자가 많아지고 협회도 인력이 부족해 전체를 단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용지에 ‘참고용’이라고 쓰인 ‘참고용 검사’ 성적서는 의뢰인이 보낸 샘플을 검사한 것으로, 협회가 품질을 보증하는 게 아니다”라며 “해당 성적서는 광고나 선전에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봉협회에서 시행하는 꿀 검사는 협회 연구소에서 직접 시료를 채취하는 ‘봉인검사’와 의뢰인이 시료를 보내주는 ‘참고용 검사’ 두 가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봉인검사는 납품을 위해 시행하는 검사로 협회에서 꿀 품질을 보증한다. 그러나 참고용 검사는 샘플로 보낸 꿀과 실제 판매하는 꿀이 일치하는지 알 수 없어 품질을 보증할 수 없다. 판매 사이트들에 첨부된 내용은 대부분 ‘참고용 검사’ 성적서다.
권 소장은 “성수기가 아닌 때는 수시로 온라인 마켓 등을 모니터링해 회원들에게는 계도하고 판매자들에게 시정조치를 하고 있다”며 “자체적으로 부정 사용을 없애는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원인을 검증 시스템의 부재로 보고 있다.
송인택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은 “국내 수입꿀에 대한 검사 항목 등은 일본과 비교해도 부족하다”며 “식품표시광고법에도 적절했는지 알아봐야 한다. 국내 유통에 대한 촘촘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식품표시광고법에 따르면 식품등의 명칭·제조방법·성분 등에 거짓·과장된 표시나 소비자를 기만하는 표시·광고 등을 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식품표시광고정책을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해당 내용을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