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책상 앞에 앉아 고민을 시작한 지 세 시간째. 딥페이크 범죄를 엄벌하고, 예방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제만큼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써보려고 한다. 분노를 넘어 처참한 심경에 빠진 많은 이에게, 어쩌면 그들이 동의하지 않을,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해 여성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딥페이크 성범죄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이 된 텔레그램에서 22만명, 40만명 등이 특정 채널에 모여 불법 합성물을 제작·유포하고 시청했다. 피해자들의 삶은 무너졌다. 이 사건을 마주한 시민들도 큰 상처를 받았다.
수사는 미온하고, 처벌은 미약하다. 많은 여성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한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탈한국’을 하는 방법을 서로 소개한다. 이 사회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 적어도 이 땅에서는 안전하게 살 수 없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떠나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디지털 성범죄는 해외에서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결국 안전한 삶이고, 그 삶을 위한 싸움은 어디서든 계속될 것이다.
포기는 쉽다. 방관은 더 쉽다.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변화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영국의 케이트 아이작스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피해자다. 그는 SNS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성인 배우의 몸에 본인의 얼굴을 합성한 영상을 발견했다. 아이작스는 끔찍한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지난 2019년 ‘#NotYourPorn’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은 영국 의회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니나 퍼넬은 호주에서 이미지 기반 학대에 맞서 싸운 활동가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바탕으로 비동의 촬영 이미지·영상의 유포를 처벌하는 법안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다. 퍼넬은 피해자들이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사회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에 사는 홀리 제이콥스는 성(性) 콘텐츠의 피해자였다. 그의 전 연인은 이별 이후 성 콘텐츠를 유포했고, 제이콥스는 3년간 세상과 연을 끊고 숨어 살았다. 제이콥스는 자신의 고통을 가만히 견디는 대신, 목소리를 냈다. 지난 2012년 ‘End Revenge Porn’ 캠페인을 시작했고,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했다. 그는 관련 법안 입법은 물론 사이버 인권 기구를 만들어 같은 피해를 입은 전 세계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이들 모두 자신이 겪은 고통을 바탕으로 사회에 목소리를 냈고, 연대했다. 결과적으로 변화를 끌어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N번방’ 사건 이후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고, 법적 대응이 강화됐다. 속도는 더디지만,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저 범죄 피해자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아니다. 존엄을 보장받는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 전체가 책임을 지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법적 보호를 촉구하고, 인식을 개선해 나갈 때 삶은 더 안전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