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 환아가 많아 아동병원은 입원실이 없다고…상급병원 응급실은 의사가 없다고 하니 분수토 하는 우리 아기는 도대체 어디서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4일 오전 11시 생후 7개월 아기를 안은 박모(36)씨가 경기도 한 아동병원을 찾았다. 새벽부터 시작된 아이의 분수토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울음을 터뜨릴 힘 하나 없이 축 늘어진 상태였다. 엑스레이를 찍고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에도 입원 병실이 가득차 상급병원으로 이동하라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소아청소년과에선 엑스레이 촬영 수 ‘장중첩증’(장이 꼬이는 질환)이 의심된다며 빨리 치료 할 수 있는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초음파로 진단하는 장중첩증은 치료가 늦으면 장이 괴사할 수 있어 빠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박씨는 “가족, 지인을 총동원해 서울·경기권 10개 상급병원에 전화를 돌렸다”며 “초음파 검사와 시술이 가능한지, 입원만이라도 가능한지 물었는데 어느 곳도 받아주지 않았다. 전화 자체를 안 받는 곳도 있었다. 그나마 연락이 닿은 응급실들은 소아 의사가 상주하지 않아 진료가 어렵다고 하거나, 의료인력이 부족해 방문해도 도움을 주기 힘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119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10여개 대학병원 응급실의 연락처를 주면서 진료 여부를 직접 확인해보라고 한 게 전부”라고 “A병원은 소아 응급의 경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받는다고 했다. B병원은 소아 진료 의사가 8시까지 상주하지만, 저녁시간대에는 초음파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빅5로 불리는 세브란스 병원은 대기만 11시간이란다. 다른 대형 상급병원들도 다른 병원을 찾으라는 말만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에는 열경련이 온 2살 유아가 응급실 11곳에서 이송 거부를 당해 의식 불명에 빠진 일도 있었다. 아이는 약 1시간 뒤 12번째 연락한 병원에서 간신히 응급 진료를 받았지만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정갈등이 장기화하고 응급실 진료 대란이 전국 곳곳에 벌어지면서 응급실 운영을 중단하거나 중단 예정인 병원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응급실 진료 상황을 보는 보건당국의 입장에서는 온도차가 느껴진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 인터뷰를 통해 전국 주요 응급실 파행 관련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의료 붕괴’를 초래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며 “정부는 최선을 다해서 지금 응급의료 진료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선 안 된다.’ 의료 각자도생 시대가 됐다
육아카페 등 온라인 카페에는 ‘입원 가능한 소아병원 또는 응급실’을 묻는 글이 쏟아진다. 응급실 진료 대란 우려가 커지면서 아이가 아플 때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주변 아동병원 상황이나 응급실 소아 당직과 같은 정보를 얻는 것이다. 아동병원이나 응급실을 이용한 부모들의 후기도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집·유치원, 학교 등에서 코로나19, 수족구병, 폐렴 등 각종 전염병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응급실 이용자 수가 급증하는 추석 연휴까지 다가오자, 부모들의 걱정은 더 커졌다.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를 향한 비판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한 지역 육아카페 회원은 “3일 아이가 아파 아주대병원 응급실에 갔다. 화요일이라서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실은 수·토요일 오전 7시부터 24시간 진료를 중단하고 있다. 진료가 제한되는 요일에 아이가 아프지 않았음에 감사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금의 의료 현실이다.
세 아이를 둔 이모씨는 “아이들 아프지 않게 조심시키는 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다”며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라 지적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김모씨도 “요즘은 응급실 갈 일 없도록, 아이들 아프지 않게 잘 케어하는 게 답”이라며 “알아서 버텨야 한다” 말했다. “요일은 정해서 아플 수도 없고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정부는 계속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응급실 진료를 못 받는 현실)인지 납득이 안 된다” “복지부 장관이 경증인지 중증인지 가까운 응급센터에 가서 들으라던데,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어야 문진이라도 하지” 등의 불만도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