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갑자기 천장에서 하수구 물이 떨어졌습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신축 아파트에 거주 중인 A씨는 외출 후 돌아오자, 하수구 오물이 새고 있었다고 밝혔다. A씨는 윗집도 물이 역류 중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줄줄 흐르는 물을 막기 위해 집안에 양동이를 둔 채 생활 중이다. 해당 아파트 누수는 음식물 처리기 사용 등으로 인해 배관이 막힌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축 아파트 내 불법 음식물 분쇄기 사용으로 인해 배관 역류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음식물 분쇄기는 필수 가전으로 여겨지며 사용자가 매해 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오픈서베이의 ‘가전제품 트렌드 리포트 2022’에 따르면 20대~50대 소비자들은 향후 1년 이내 구매를 희망하는 주방가전으로 ‘음식물처리기(49.3%)’를 꼽았다.
문제는 불법 음식물 처리기 사용이다. 주방용 음식물 분쇄기는 찌꺼기 80% 이상을 회수해야 한다. 그러나 회수통이나 통 내부 거름망을 없애고 음식물 찌꺼기를 하수관로로 흘려보내는 불법 분쇄기 사용이 만연한 상황이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2023년 사이 불법 개조가 적발돼 인증 취소된 분쇄기 제품은 46개 종으로 조사됐다. 제품 인증 취소를 경험한 업체도 19개사에 달한다.
환경부는 음식물 분쇄기에서 배출되는 쓰레기가 전체의 20%를 넘을 경우 사용자에게는 100만원의 벌금을, 판매자에게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다만, 일부 불법인 사실을 모르거나 몰래 쓰다 아파트 내 누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빌라에 거주 중인 B씨도 위층 세대의 불법 음식물 분쇄기 사용으로 인해 하수구 역류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B씨는 “지속적으로 하수구가 역류하고 갈린 음식물이 올라왔다”며 “빌라 관리비로 하수구를 몇 차례 뚫다 한 세대에서 음식물 분쇄기 사용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적인 음식물 분쇄기 사용으로 인해 싱크대가 망가지고 집이 물에 잠겼다”고 호소했다.
건설 업계에서도 이처럼 입주민 과실로 인한 하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싱크대나 화장실 역류, 누수 같은 경우 입주자 과실이 많은 편”이라며 “폐식용유, 고기 기름, 음식물 분쇄기 사용 등으로 인해 배수관에 막히면서 역류, 누수가 발생한다. 단 이 같은 문제는 생활 하자로 건설사 과실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음식물 분쇄기 사용은 불법인데 불법인지 모르고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시공사 입장에서 개인 세대에서 설치하는 부분까지 막을 수 없어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불법 음식물 분쇄기로 인한 누수‧역류는 설치 세대가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공용 부분 문제인 경우 관리사무소에서 보수를 진행하면 된다”면서도 “불법 음식물 분쇄기를 사용한 경우 설치 세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음식물 분쇄기는 불법이기 때문에 더 따질 여지도 없다”며 “개별 세대에서 설치한 경우 설치 세대에서 보상해야 한다. 보상을 안 하려 하면 결국 세대 간 소송으로 가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전문가는 이 같은 문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현행법상 불법임에도 단속이 안 이뤄지고 있다”며 “음식물 분쇄기 보급이 확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애초에 불법으로 못을 박아야 하는데 음식물 찌꺼기 80%만 회수하게 하고 있어 앞으로 아파트 배관이나 지자체 하수처리장 오염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