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병원 등 불법개설기관으로부터 환수가 결정된 건강보험 재정이 올해 들어서만 2000억원을 넘었지만, 실제 징수한 비율은 7.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수 부족 문제가 반복되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 내 특별사법경찰(특사경) 도입 필요성이 높아지지만, 의료계 반대가 여전한 상황이다.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건보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사무장병원, 면허대여약국 등 불법개설기관의 진료비 허위·부당청구 등이 적발돼 환수를 결정한 금액은 2034억원이었다. 지난해 전체 환수 결정액인 1878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그러나 건보공단이 환수를 결정한 뒤 불법개설기관에서 실제 징수한 금액은 153억원에 그쳤다. 징수율로 봤을 때 7.5% 수준이다. 나머지 1800여억원은 아직 회수하지 못한 셈이다.
건보공단은 수사기관이 불법개설 혐의를 인정하면 해당 기관에서 청구한 진료비 지급을 보류하고, 나머지 금액을 환수하고 있다. 하지만 불법개설기관들은 적발된 뒤 빠르게 문을 닫거나, 수익을 은닉해 압류를 피하는 방식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혼한 배우자에게 고급 주택을 매매하게 하거나, 토지를 자녀에게 증여하는 등 재산은닉 방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수사기관이 사무장병원을 수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1.8개월이다. 길게는 4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건보공단은 변호사, 보건의료 전문가, 전직 수사관 등 여러 조사 인력을 두고 불법개설기관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강제수사권이 없어 늘 한계에 부딪힌다. 지난 2009년부터 2023년까지 14년간 적발된 불법개설기관은 1717개소다. 이들 기관으로부터 환수가 결정된 금액은 무려 3조4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징수가 이뤄진 금액은 2300억원(6.9%) 정도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환수 결정액이 급감했던 2021년 등을 빼면 대부분 징수율은 한 자릿수를 맴돌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달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를 통해 “보건복지부·지방자치단체 소속 특사경 증원을 통한 대응 역량 강화, 경찰 등 수사기관과의 공조 강화를 통한 환수 실적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건보공단도 자체 특사경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특사경이 도입되면 수사 기간이 약 3개월로 줄어들고, 2000억원가량 재정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특사경 도입은 안갯속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지지부진한 논의 속에서 결국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번 22대 국회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여럿 발의된 상태다.
김미애 의원은 “불법개설기관 대상 환수 결정액이 크게 늘고 있지만, 징수율이 매우 낮아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상황이 아닌지 우려된다”면서 “건보공단 특사경을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의료계의 반대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특사경 법안이 의료인의 목숨을 빼앗는다고 주장했다. 사무장병원 문제는 건보공단의 조사 권한이 부족해 생긴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충분한 확인 없이 개설 허가를 내줬기 때문에 이어지는 것이라고 짚는다.
의협은 “공단이 의료기관을 단속하고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되면 대등해야 할 보험자와 공급자의 관계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며 “임의 절차마저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사실상 강제 수사처럼 변질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