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국가적인 입장에선 비상사태입니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나오는 부정적인 요인이 분명한 만큼, 출산을 통해 국가에 ‘플러스(+)’를 주는 가정에는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줘야 합니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에서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을 만났다. 한국경제학회 첫 여성 학회장이자 첫 여성 통계청장을 지낸 그 역시 두 아이를 키우며 회사에 다니고, 경제·사회 연구에 매진해 온 대한민국 워킹맘이다.
실질적 저출생 대응 예산 확대해야…특별회계로 파격 지원
저출생 원인은 상당히 복잡하다. 일·가정 양립은 아이를 둔 가정에 언제나 난제고 핵가족화로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친족 공동체가 무너진 건 오래다. 급속한 산업화로 경제·사회 시스템 구축이 미비한 상황에서 ‘출산·육아 부담’ ‘돌봄’ ‘일·가정 양립’ 등의 문제가 지목될 때마다 예산 집행으로 땜질했다. 그러나 18년간 380조원을 퍼붓고도 저출산 추세 흐름을 돌리지 못했다.
‘실질적인 저출생 대응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재정 전문가인 이 원장의 입장이다. 저출생 극복과 관련된 직접적 관련성만 두고 보면 실질적인 저출생 대응 예산은 미미하다. 이 원장은 “1·2차 기본계획 때는 2조원씩 늘어서 대략 21조원까지 확대됐었는데 3·4차 때부터 늘지 않았다. 더구나 절반 가까이가 환경 예산인데, 예컨대 청년 주택과 같은 내용이 저출생 예산에 포함된 것. (저출생 문제 요인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저출생 대응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원장은 “저출생 대응, 인구 특별회계가 필요하다”며 “특별회계는 그 목적에 맞게 재원을 사용해야 하는데 (재원을 계속 사용하게 되는 게 부담이라면) ‘합계출산율 1.3명’과 같이 목표치에 도달하면 특별회계를 소멸하는 식으로 운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출산·양육을 기피하는 사회에서 출산·양육을 선택한 가정에 깜짝 놀랄 만큼의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자녀가 18세가 될 때까지 월 50만~100만원의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다.
“60~70년대 한국의 경제 발전기에 외국 차관 도입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자본이 없어 어떤 형식의 차관이든 정부가 보증해 준다고 했을 정도로 자본에 대한 강력한 정책을 펼쳤어요. 이제는 물적 지원이 아닌 인적 자원에, 투자의 개념으로 혜택을 줘야 할 때입니다. 세제상의 혜택이나 국가적 혜택으로 출산을 장려해야 할 타이밍이죠.”
특히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대한 지원 확대가 출산·양육의 부정적 이미지를 녹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행복한 사회가 아이를 키우고 싶은 사회라는 것이다. 이 원장은 “한 번 아이를 낳고 키워본 사람은 ‘아이가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어 다음 출산을 계획할 가능성이 높다”며 “아이를 아예 낳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들을 설득하는 데 정책을 맞춰 왔다. 다만 2015년부터 한 명만 낳기 시작하는 가정이 늘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부모와 아이가 같이 하는 시간↑…기업의 일·가정 양립 문화 조성 필요
다행인 점은 정부와 지자체, 기업, 시민단체, 학계가 저출생 위기에 공감하며 정책과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다만 사회 분위기는 양육 가정과 경력 단절(경력 보유) 여성에 여전히 차갑다. 지금은 성인인 두 자녀가 어렸던 시절, 일하는 엄마 이 원장과 현재를 살아가는 워킹맘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사내 등산 행사일에 어린 두 자녀를 맡길 곳이 없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에 올랐던 이 원장도, 아픈 아이를 뒤로하고 일하러 가야 하는 요즘 엄마도 회사를 포기할 수 없는 건 ‘절박함’이다.
이 원장은 “아무리 좋은 회사를 만나서 육아휴직을 다 쓸 수 있다고 해도,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회사로) 돌아오면 업무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집에서 아이를 보는 일도 쉽지 않은데, 남자 동기들 직급이 올라가는 동안 본인은 뒤처지게 되니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학력 고스펙인 여성이라도 경력이 단절되면 이전 경력과 연결되지 않는, 소득이 낮고 노동강도가 세더라도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결혼·출산·양육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어렵다.
“독일은 ‘부모 시간’을 직원 권리로 보장해요. 부모가 아이와 같이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장해 주는 거예요. (국가와 기업이) 기본적인 철학을 이렇게 잡고 근무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건데. 한국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죠.”
정부 못지않게 기업이 나서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일·가정 양립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이 원장은 중소·중견기업은 육아휴직자를 위한 대체 인력 투입 확대와 육아휴직과 같은 사내 복지제도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출생 현상은 결국 개인이 ‘나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갈까’에 대한 이야기. 결혼·출산 결정은 개인적인 부분인데 이런 부분이 모여 국가적인 부분이 되는 거예요. 저출생 문제는 복합적인 요인인 만큼 통섭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원장은 최근 저출생 대응을 위해 출산·양육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후회되는 것도 있으나 가장 후회가 안 되는 건 아이들을 낳아서 잘 키웠다는 것. 자녀는 가족이자 나의 편”이라며 한미연의 캠페인 등을 통해 가족의 긍정적인 모습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