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였나.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너무나 심한 절차적 하자가 속속히 드러났다. 여기에 대한축구협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거짓말로 대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축구협회 감독 선임 감사 결과 브리핑을 진행했다. 문체부는 “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관련 규정을 모두 준수하였다고 했으나 특정감사 결과,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부적정한 감독 선임 문제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세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문체부 브리핑에 따르면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때는 전력강화위원회가 완전히 무력화됐다. 위원회 구성 전부터 에이전트를 선임해 후보자 20여 명을 사전 접촉했다. 처음부터 전력강화위원들을 완전히 배제한 것이다. 이사회가 최종적으로 선임해야 하나, 이 절차도 패싱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독 최종 면접을 직접 진행한 정몽규 회장은 자신과 친분이 있던 클린스만을 뽑으면서 한국 축구 발전이 아닌, 본인 입맛에 맞는 감독을 택했다.
이미 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홍 감독 선임이 공정하게 될 리 없었다. 규정상 권한이 없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최종 감독 후보자를 추천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앞서 알려진 대로, 홍 감독에게만 면접을 보지 않는 등 특혜를 부여한 점도 다시금 확인했다.
비판을 피하기 위한 축구협회의 거짓말도 드러났다. 축구협회는 정해성 전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축구협회에 후속 조치를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 기술이사가 감독 선임 전권을 부여받은 것도 후속 조치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감사 결과, 정 전 위원장은 축구협회에 앞선 요청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이 기술이사에게 감독 선임 권한이 부여됐다는 축구협회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축구협회가 저지른 주먹구구식 행정은 한국 축구를 퇴보시키는 행위다. “‘동네 계모임’만도 못하다”는 표현이 나온다. 올해만 하더라도 1876억원 예산이 책정된 막대한 세금을 받는 단체인 축구협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축구협회는 도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건가.
한국 축구는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2010 남아공월드컵 이후 10년 만에 16강 토너먼트 진출을 일궜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등 황금세대가 건재했기에 한국 축구는 오는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2002년 4강 신화에 버금가는 성적을 노렸다. 파울로 벤투 감독과 결별한 시점부터 어떤 감독이 한국 지휘봉을 맡느냐가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카타르월드컵 이후 2년을 돌아보자. 더 발전할 수 있었던 한국 축구는 날이 갈수록 퇴보했다. 정몽규 회장의 독단적인 선택으로 클린스만 감독이 왔고, 2023 아시안컵에서 졸전 끝에 탈락했다. 이후 축구협회는 표면적으로, 이번에는 뛰어난 감독을 데려오겠다며 감독 선임 과정을 질질 끌었다. 한국 대표팀은 사령탑이 없는 상황으로 무려 5개월을 보냈다.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완전히 잃은 셈이다.
그렇게 기다렸더니, 돌아온 건 홍명보였다. 공정한 절차에 의해 뽑혔다면 모를까, 특혜를 받은 홍명보가 감독으로 부임하자 팬들은 거세게 비판했다. 홍 감독 대표팀 복귀전이 열린 상암에서는 이례적으로 팬들의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팬, 선수단, 코칭스태프가 한마음으로 모여도 모자랄 판에 시작부터 불협화음이 나기 시작했다. 모두 축구협회가 자초한 일이다.
사실 축구협회 개혁은 지금도 굉장히 늦었다. 다만 더 늦지 않은 시점에서 하루빨리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 정 회장이 4연임하지 않는 것부터가 시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