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부터 10일까지 이틀에 한 판 간격으로 5판, 시니어리그와 여자리그에서 대국을 펼치고 있는 선수가 있다. ‘여자바둑리그 불참’ 폭탄선언으로 바둑계를 흔든 조혜연 9단이다.
13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 여자 랭킹 9위 조혜연 9단이 ‘스포츠’를 표방하고 있는 바둑리그의 시니어 부문과 여자리그를 오가며 2개 팀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조 9단은 ‘레전드리그’라고 명칭을 바꾼 시니어리그(남자 만 50세 이상, 여자 만 40세 이상 출전)에선 경기 고양특례시 팀, 여자리그에선 여수 세계섬박람회 팀에 동시에 소속돼 양대 리그를 모두 출전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조 9단은 지난 1일 시니어리그에 출전한 이후 다음날이 2일 여자리그에 출전했고, 다시 3일에는 시니어리그 경기를 치렀다. 9일에도 시니어리그 5라운드에 출전해 양건 9단에게 패했고, 역시 다음날인 10일 여자리그에선 오유진 9단과 승부판을 지면서 팀의 5위 추락을 지켜봤다. 시니어리그에선 고양시 팀 주장을 맡고 있고, 여자리그에선 여수 2지명을 맡고 있는 팀 핵심 전력인 조 9단의 경기 결과는 팀 승패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KB국민은행 바둑리그와 NH농협은행 여자바둑리그,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재정 후원하는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시니어리그)까지 3개 리그를 모두 주최·주관하는 한국기원은 ‘리그 범람’으로 인한 기존 명문 기전의 축소 우려를 일축하며 ‘스포츠 바둑’으로서 바둑리그를 추진한 지 오래다. 하지만 끊임없는 ‘기(棋)단제’ 전환 요구를 끝끝내 묵살하면서 기형적인 구조를 낳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먼저, 다른 스포츠에는 한 선수가 2개 이상의 구단에 동시에 소속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올 시즌 KB국민은행 바둑리그와 NH농협은행 여자바둑리그를 동시에 불참한 최정 9단의 경우, 당초 바둑리그와 여자리그에서 각각 소속팀이 있었던 것은 물론, 올해 유일하게 출전한 리그 형태 기전인 중국 여자바둑 을조리그까지 포함하면 각기 다른 리그에서 3개의 팀에 동시에 소속된 적도 있었다.
지난 시즌 바둑리그 우승팀 소속인 김채영 9단, 바둑리그 2부격인 ‘퓨처스리그’에 종종 모습을 보였던 오유진 9단 등을 포함하면, 여자리그와 바둑리그 양쪽에 둥지를 튼 선수들은 꽤 있다. 다만 기전 개최 시기가 달라 동시에 선수로 출전하면서 대국을 펼친 사례는 없었는데, 이번에 조혜연 9단에 의해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조 9단은 여자바둑리그 개막 당시 여자 랭킹 7위로, 8개 팀이 경쟁을 펼치는 여자바둑리그에서 산술적으로는 주장을 맡을 수도 있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여수에 ‘최강 1지명’ 김은지 9단이 있었기 때문에 2지명으로 편입됐지만 팀의 주축 선수임에 틀림없다. 시니어리그에선 첫 출전임에도 주장 자리를 꿰차면서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는데, 양대 리그에서 보인 행보가 사뭇 다르다.
기대를 모았던 여자리그에선 선수선발식 직후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여수 팀 부진의 원인 중 하나다. 김은지 9단이 12라운드 전 경기에 출전해 12연승을 달리면서 ‘확실한 1승 카드’로 맹활약하고 있음에도 조 9단이 2승6패로 크게 부진한 탓에 팀이 5위로 밀려났다.
반면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는 시니어리그에선 6라운드 현재 4승2패로 선전하면서 팀의 상위권 도약을 이끌었다. 조 9단 소속팀인 고양시는 팀 전적 4승2패로 2위 수소도시 완주(4승2패)에 개인 승이 한 판 뒤진 3위에 랭크돼 있다.
바둑리그와 여자리그, 시니어리그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는 한국기원 입장에서도 향후 조혜연 9단과 같은 사례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규정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시니어리그 초반 4연승을 달렸던 조 9단이 여자리그와 일정이 겹친 이후 갑자기 2연패를 당하며 부진의 늪에 빠진 점은 물론, 하루 간격으로 어제는 시니어리그 오늘은 여자리그에 각기 다른 소속팀으로 출전하는 것이 어떻게 비춰질지 또한 심사숙고 해야한다. 한편 쿠키뉴스는 이에 대한 한국기원의 입장을 물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2024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는 8개 팀이 3판 다승제 14라운드 더블리그(총 56경기, 168대국)로 순위를 가리고 상위 4개 팀이 스텝래더 방식으로 포스트시즌을 펼쳐 최종 우승팀을 결정한다. 우승 상금은 5500만원, 준우승 상금은 3500만원이며, 3위 2500만원, 4위 1500만원이다. 상금과 별도로 승자 130만원, 패자 40만원의 대국료가 지급된다. 제한시간은 시간누적(피셔) 방식으로 장고는 각자 40분에 추가시간 20초, 속기는 각자 10분에 추가시간 20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재정 후원하며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하는 시니어리그 상금은 우승 3000만원, 준우승 1500만원이다. 팀 상금과 별도로 정규시즌 매판 승자는 70만원, 패자는 40만원을 받는다. 미출전 수당은 20만원이 책정돼 대국에 출전하지 않는 선수들에게도 수당이 지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