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였던 영풍그룹과 고려아연이 홀로서기에 돌입한 가운데,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영풍의 손을 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에 나섰다. 사모펀드는 기본적으로 기업 인수 후 가치를 늘려 이를 다시 매각해 수익을 실현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국가기간산업을 영위하는 기업 간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연말, 글로벌 비철금속 리더인 두 기업의 ‘송구영신’을 위해 과거의 교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
지난 2021년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를 이끄는 김병주 회장과 관련해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 매각 후 성과보수 1000억원을 받고도 소득 신고를 장기간 누락했다는 것이 당시 김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다. 이후 실제로 MBK는 국세청으로부터 수백억 원대의 추징을 당했다.
29일 현재 MBK와 김 회장을 둘러싼 의혹들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한 시민단체는 미국 국적인 김 회장이 대부분의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한국에서 하고 있음에도 개인 소득세를 탈루했다는 주장을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해오고 있다. 이와 동시에 MBK의 경영 능력도 시험대에 오른 상태다. 홈플러스 인수 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어가며 노동조합과 갈등이 계속됐는데, 점포를 줄여 빚을 갚고 있음에도 실적 악화를 벗어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MBK는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로 꼽히는 초대형 PE다. 그러나 잇따른 투자 실패 사례와 국내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로 ‘아시아 최대 PE’를 표방하는 MBK의 위상에 흠집이 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MBK는 국가기간산업 고려아연의 경영권 인수에 나선 상태다. 지난해 말 한국앤컴퍼니에 이어 9개월 만에 또 다시 대기업 경영권 인수에 나서면서 재계가 긴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최근 외신을 통해 사실상 국내 재계를 겨냥하겠다고 밝히면서 산업계를 포함해 정치권 반감 또한 커지고 있다.
김 회장은 홍콩 투자은행(IB) 전문 매체인 아시아벤처캐피털저널(AVCJ) 인터뷰에서 “역동성을 추구하는 한국 시장은 (기업 지배구조) 변화가 조금 더 빠를 것 같다”면서 “우리는 그 변화의 주체 중 하나가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재계에선 고려아연과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타깃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무엇보다 국내 여러 대기업은 3·4세 오너 경영인으로 승계 과정에서 선대에 비해 소유 구조 관점에서 지배력이 취약한 경우가 많다. 50%가 넘는 상속세를 감안하면 이들이 선대 경영인과 대등한 수준의 지분을 유지하면서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3·4세 오너 경영인의 지배력 확대 발판이 될 주요 지주사 지분율은 대부분 한 자릿수에 그친다. 이들은 소유 구조 관점에서 지배력은 취약하지만, 의사 결정의 정점에서 포괄적 권한을 행사한다. 승계 절차 마무리 전까진 상속세 등 이슈로 기업가치 제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주주 간 이해관계 불일치에 따른 갈등이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구조다.
결국 창업자 가문이라는 상징성을 등에 업었더라도 지배구조 논란이 불거지면 언제든 승계 정당성을 집중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만큼 MBK와 같은 사모펀드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도 높다.
앞서 MBK가 타깃으로 삼은 대기업집단 역시 불완전한 지배구조와 주요 주주·창업자 가문 간 갈등 등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조현식 전 고문과 조현범 회장 간 갈등 과정에서 MBK가 개입하게 됐다. 고려아연 역시 승계 과정에서 외부에 노출된 1대 주주와 2대 주주 간 반목이 경영권 분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처럼 재계의 승계과정이 상속세 등으로 어려운 반면, 사모펀드에 대한 제약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MBK는 지난 18일 일본 도쿄에서 기관투자자 대상 연차 총회를 열고 6호 바이아웃펀드 2차 클로징까지 50억달러(약 7조원)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6호 바이아웃펀드 목표액의 약 70% 이상으로, 중동 등 해외 큰손들이 대부분의 출자자다. 때문에 미국 국적의 김 회장과 더불어 중동, 중국 등 자금이 MBK 주주로 참여한 부분 역시 외국자본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석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영 시대에서 우리나라도 외국계 자본에 대항하고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면서 “국내 재계의 지배구조 선진화도 필요한 일이나, 사모펀드의 M&A 시도에 취약한 점 역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