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업계 시급한 현안을 해소해줄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비상계엄령 여파로 또 다시 뒤로 밀릴 위기에 놓였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정기국회 통과는 사실상 불투명해졌다.
6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 특별법)과 고준위 방폐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방폐법) 등 에너지 분야 주요 특별법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될 예정이었으나, 대통령 탄핵안 표결 등 예상치 못한 일정으로 법안소위 개회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산자중기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오는 9일 산자중기위 법안소위가 예정돼 있고 이날 전력망 특별법 등 현안을 논의해 추가 소위원회 개최 등을 논의할 계획이었다”면서 “이 같은 일정이 지난 2일 이전에 확정됐고, 이후에 국회 상황 변화가 생겨서 저희도 예정대로 상임위가 열릴지 말지 여부는 아직까지 연락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산자중기위 야당 간사인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에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취지로 답변한 바 있다. 올해 정기국회는 오는 10일까지다.
현재 야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해제한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탄핵안 표결을 추진하고 있다. 일정대로면 오는 7일 표결이 진행될 예정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하고 있는 만큼, 표결 결과에 관계없이 여야 진통은 오랜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21대 국회 말미에도 여야 합의 처리가 예상됐던 고준위 방폐법이 ‘채상병 특검법’ 등 여야 정쟁에 휘말려 폐기 수순을 밟았는데,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자칫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갈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건립의 기틀이 될 법안인 고준위 방폐법은 지난 20대 국회부터 본격 추진돼 왔으나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방사능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지하 500m 이상 깊은 땅 속에 건식저장방식으로 처분될 필요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사용후핵연료 대부분을 습식저장방식으로 원전 내 임시저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 정부 들어 원자력발전량을 점차 증대하는 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은 국내 원전 32기를 가동하면 총 4만4692톤의 폐기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1년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에 따르면, 경수로형 원전 기준 고리원전과 한빛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이 2031년, 한울원전은 2032년, 신월성원전은 2044년부터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원전 폐기물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되면 원전 가동을 당연히 멈출 수밖에 없다”면서 “국내 발전 비중의 30%를 차지하는 원전이 멈추면 전력공급에 있어 국가적 대란이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고준위 방폐법 만큼이나 전력망 특별법도 통과가 시급하다.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 등 대규모 전력수요를 충당하고 재생에너지의 출력제한 문제를 해소할 전력망 특별법은 전력망 적기 구축을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인허가 절차를 앞당기고 예산·기금 등을 건설비용과 지역주민 보상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제도적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등 시행을 앞두고 국내 송·배전망 구축 및 확대가 필요하나, 이를 주관하는 한국전력의 부채가 200조원을 웃돌고 하루 이자만 120억원가량을 지출하고 있어 특별법에 따른 정부 주도의 추진이 시급한 실정이다.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 원장은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공급은 첨단산업을 포함한 산업계 전체의 경쟁력 확보에 필수조건이며, 이는 튼튼하고 유연한 전력망 구축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라며 “국가적 과제인 핵심 전력망 적기 구축을 위해 현행 건설체계의 한계를 극복한 전력망 특별법이 신속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