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분 비상계엄’에 10개월 끌어온 의료개혁 치명상…“동력 잃고 좌초”

‘155분 비상계엄’에 10개월 끌어온 의료개혁 치명상…“동력 잃고 좌초”

기사승인 2024-12-06 06:00:08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제11차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선포한 비상계엄이 155분 만에 무산됨과 동시에 그동안 어렵게 추진해온 의료개혁도 동력을 잃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계엄 포고령에 담긴 ‘미복귀 의료인 처단’ 문구로 인해 의정 신뢰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5일 비상계엄 후폭풍이 정국을 휩쓴 가운데 ‘전공의 등 파업·이탈 의료인은 48시간 내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하겠다’는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두고 의료계는 “우리를 ‘반국가 세력’ ‘처단 대상’으로 몰았다”며 들끓고 있다. 의정갈등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전공의들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규탄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이날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우리는 반민주적 계엄을 실행한 독재 정권과 대화할 수 없다. 의료개악을 중단하고, 대한민국 의료를 정상화하라.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촉구했다.

느닷없이 나온 비상계엄 때문에 정부가 꼬박 10개월을 끌어온 의료개혁은 치명상을 입고 정당성을 잃게 됐다. 대학별 수시 모집 합격자 발표가 시작되며 예정된 2025학년도 의대 입시는 그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이후 의대 정원 증원과 의학교육 현장 정상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은 적신호가 켜졌다. 대한병원협회(병협)가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참여 중단을 선언하며 각종 의료개혁 과제 논의도 불투명해졌다. 병협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정부의 왜곡된 시각과 폭력적 행태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면서 “국민 건강을 위해 살아온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인들의 명예와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줬다”고 비판했다.

의개특위는 비상계엄 선포·해제에 따라 정국에 혼란이 일자 예정됐던 회의 일정들을 연기했다. 의개특위는 이달 말 비급여와 실손보험 개선 방안 등을 포함한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노연홍 의개특위 위원장은 “지역·필수의료를 살리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제”라면서 의료계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며 개혁 방안을 마련해가겠다고 했지만, 추후 의미 있는 논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 신규 전공의 인력 수급도 안갯속이다.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내년 상반기부터 전국 수련병원에서 근무할 전공의 6950명을 모집한다고 4일 공고했다. 인턴 3356명, 레지던트 3594명이다. 각 병원은 오는 9일 오후 5시까지 원서를 접수하고 15일 필기시험, 17~18일 실기시험을 치른 뒤 19일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의료계는 의사 국가시험 응시율이 급감하고, 레지던트 1년차 과정을 시작할 인턴들이 대부분 사직했다는 점을 들어 이번 모집에 응할 의대 졸업생과 인턴 수료자가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4일 기준 211개 수련병원 인턴 3068명 중 102명(3.3%)만 정상 출근 중이다. 내년 1월 치러질 국시 필기시험 응시자는 304명에 불과하다. 이들 모두 합격한다고 해도 인턴 모집 정원엔 턱없이 모자란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4일 자정 무렵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2문 앞에서 시민들이 모여 ‘계엄 무효’를 외치고 있다. 사진=유희태 기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정 간 무너진 신뢰관계 속에서 정부의 의료개혁 추진은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박형욱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필수의료를 살린다는 명분이 없다”면서 “필수의료를 살린다고 하지만 필수의료를 전공하는 의사들의 동의를 받지 못하는 정책, 지역의료를 살린다면서 지역에서 헌신하는 의료인들의 동의를 받지 못하는 정책으로 이 난국을 타개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년도 의대 모집 중지를 재차 요구했다. 박 위원장은 “대통령은 전공의와 의료인을 체제 전복 세력과 동급으로 취급하고, 망상에 기초해 의료인을 반국가사범으로 몰았다”며 “우리 사회가 겪을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은 의료의 현실과 미래에 절망한 사직 전공의들이 다시 돌아와 수련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합당한 조치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를 향한 국회의 질타도 쏟아졌다. 야당 의원들은 비상계엄 때문에 의료개혁이 좌초됐다고 짚었다.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들은 의대 정원 증원을 지지했다. ‘응급실 뺑뺑이’ 등이 반복되지 않는 대한민국을 원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전공의 처단’이라는 비상계엄 포고령 때문에 의료개혁은 물 건너갔다. 지금까지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고 참아준 국민들에게 복지부 장관은 뭐라고 말할 것이며, 의료개혁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같은 당 박희승 의원은 “윤 대통령이 다수의 국무위원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밀어붙여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데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의료개혁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정부는 의료개혁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단 입장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료개혁과 연금개혁은 내 책임 하에 추진했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현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국무위원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질 것”이라며 “의료개혁은 우리나라 의료를 지속 가능한 체계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 공급자, 수요자 등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 발전적인 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전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조 장관은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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