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과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니티) 간 분쟁의 2차 중재 판정이 나왔다. 국제상업회의소(ICC)는 신창재 교보생명 이사회 의장이 새 감정평가기관을 선정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교보생명과 어피니티는 이번 판정에도 갈등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20일 교보생명과 어피니티에 따르면 중재판정부는 지난 17일(현지 시간) 신 의장에게 어피니티의 풋옵션 주식 공정시장가치(FMV)를 산정할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하라고 판정했다. 어피니티가 이번 판정을 반긴 반면, 교보생명은 1차 중재 판정과 충돌한다며 반발했다.
어피니티는 지난 2012년 교보생명의 지분 24.01%를 1주당 24만5000원에 매입했다. 당시 2015년 말까지 교보생명이 기업공개(상장)를 하지 않으면 신 의장에게 매입한 주식을 팔 수 있는 풋옵션 권리가 포함된 주주간 계약을 신 의장과 체결했다. 이때 풋옵션 가격은 사전에 정하지 않고 FMV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교보생명은 약속한 시기까지 기업공개를 하지 않았다. 어피니티는 2018년 10월에 풋옵션을 사용해 교보생명 주식을 신 의장에게 매매하려고 했다. 문제는 풋옵션 가격이다. 어피니티는 주당 41만원을 제시했고 신 의장이 동의하지 않자 2019년 3월 ICC에 중재를 제기했다. 2021년 9월 중재판정부는 “신 의장이 어피니티가 제시하는 가격에 풋옵션을 매수할 의무가 없다”고 1차 판정을 내렸다.
어피니티는 2차 판정에 대해 “풋옵션 행사 금액이 확정되고 풋옵션이 빠른 시일 내에 이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중재판정부가 어피니티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중재판정부가 신 회장(의장)이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행사 금액을 지급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신 의장 측은 이번 2차 중재가 1차 중재와 충돌한다는 입장이다. ICC 판정은 단심제로 한 번 판정이 내려지면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신 의장 측은 2차 판정에 대해 “1차 중재판정부의 판정 내용을 대부분 인정했음에도 평가기관을 선임하라고 결정한 것은 1차 판정을 무시한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교보생명도 “1차 중재판정부는 2021년 9월 어피니티가 요구한 41만원을 비롯한 어떤 가격에도 신 회장이 풋주식을 매수할 의무가 없다고 판정했다”면서 “어피니티가 제시한 풋가격이 합리적으로 산출된 것이 아닌 만큼 신 의장이 풋주식을 매수할 의무가 없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매수 의무가 없다는 1차 판정과 달리 2차 판정에서 매수 의무를 인정했다는 지적이다.
교보생명에 따르면 신 의장 측은 중재판정 취소 등 법적 절차를 고려하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법조계에서도 이번 판정이 기판력을 위반한 중대 사례로 중재판정취소 및 중재판정 승인‧집행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교보생명이 설명한 주주간 계약에 따르면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양측은 각각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해 FMV를 평가하고, 그 차이가 10% 이내이면 평균 가격을 풋옵션 행사 가격으로 인정한다. 차이가 10%를 넘기면 어피니티가 제3의 평가기관 3곳을 제시하고 그 중 하나를 신 의장이 택해 그 가격이 행사 가격이 된다.
교보생명은 제3의 평가기관이 산정한 풋옵션 가격이 어피니티의 초기 투자가격인 24만5000원을 초과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안진회계법인은 교보생명 주식의 FMV를 1주당 41만원으로 선정했는데, 2018년 당시 교보생명의 IPO 공모 예정가인 18~21만원과 차이가 크다”면서 “과거 안진회계법인은 교보생명 풋옵션 FMV 산출 과정에서 어피니티와의 부정공모 혐의로 경찰에 기소됐다”고 지적했다.
어피니티 관계자는 “신 회장 측이 2차 중재 판정 결과에 승복하고 이를 신속히 이행해 교보생명을 둘러싼 분쟁 해결에 나설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