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빚던 우리 술 직접 제조”…국순당 설맞이 차례주 빚기 교실

“집집마다 빚던 우리 술 직접 제조”…국순당 설맞이 차례주 빚기 교실

국순당 우리술아름터에서 ‘신도주’ 빚기…참가자 30여명
쌀·누룩으로 만든 우리술…일제강점기 후 명맥 소실 多
술, 각 나라 식문화 연관 깊어…국내선 막걸리 유네스코 등재 노력

기사승인 2025-01-12 06:00:06
행사 참가자들이 11일 서울 강남구 국순당 우리술아름터 ‘설맞이 차례주 빚기 교실’에서 전통 차례주를 빚고 있다. 김건주 기자

“보통 차례상에 ‘정종’을 올린다고 하는데, 정종은 일제강점기 이후 들어온 ‘일본식 청주’(사케)의 상표입니다. 이전에는 집집마다 고유한 방법으로 술을 빚어 차례상에 올렸습니다.”

오는 2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며 엿새 황금연휴가 된 가운데, 설 명절을 앞두고 전통 차례주를 직접 빚는 자리가 마련됐다.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국순당빌딩 ‘우리술아름터’에는 올해 설에 사용할 전통 차례주를 빚는 ‘설맞이 차례주 빚기 교실’ 행사가 열렸다. 이날 차례주 빚기 교실에는 30여명의 신청자들이 참가했다.

국순당에 따르면 우리술은 삼국시대 이전에 태동했다. 고려시대에는 우리술 3대 기준인 탁주·청주(약주)·소주의 기틀이 마련됐다. 집에서 빚는 술 ‘가양주’를 꽃 피운 조선시대에는 우리술의 전성기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우리술이 만들어졌다.

농경 문화가 발달한 한반도는 주식인 쌀을 활용한 술을 빚었다. 우리나라 술이 대부분 쌀로 빚어진 이유다. 특히 생쌀을 가루내거나 고두밥·죽, 백설기·구명떡·개떡·물송편 등을 만들어 술 재료로 다양하게 활용했다. 여기에 계절·지역마다 다른 다양한 꽃과 열매를 우리술 재료로 활용해 가정마다 술을 빚는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차례주 빚기에 사용된 재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항아리(5L), 백설기, 누룩(130g), 밀가루(13g). 김건주 기자

이날 실습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차례상에 올리던 술 ‘신도주’를 빚는 자리가 마련됐다. 햅쌀로 무리떡(백설기)을 만든 후 누룩을 잘 섞어 빚는 전통 차례주다.

권희숙 국순당 연구소 주류개발팀 부장은 “신도주는 그 해 처음 거둔 햅쌀로 빚은 술로, 추석 차례상에 올리던 술”이라며 “실제 설에 올리는 차례주로 문헌에 명시된 술은 없지만, 차례주에 가장 적합한 술이 신도주라고 생각해 (자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항아리에 조각낸 떡(백설기)과 누룩·밀가루·물을 붓고 잘게 풀어주고 있다. 김건주 기자

신도주 빚기는 총 2단계 담금 과정을 거친다. 이날 참가자들은 설명에 따라 1단 담금에서는 항아리에 잘게 뜯은 백설기, 누룩·밀가루를 섞어 물 1리터(L)를 붓고 풀어줬다. 항아리 입구는 비닐이나 천으로 덮고 숨구멍을 내 고무줄로 막았다. 발효 적정 온도는 25~27도다.

2단 담금은 1단 담금 3일 후 시작된다. 차게 식힌 고두밥 800g과 물 700ml를 넣고 혼합해 마찬가지로 숨구멍을 트고 입구를 막으면 10일 후 술이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권 부장은 “누룩에 살고 있는 ‘효모’가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내보내 술이 만들어진다”며 “효모가 2단 담금에서 고두밥의 당분을 먹고 술을 만든다. 중국, 일본에도 각각 우리나라의 누룩에 해당하는 발효제가 있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백질 함량이 높은 밀가루가 미생물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해 맛있는 술이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권희숙 국순당 연구소 주류개발팀 부장이 백설기와 밀누룩으로 술을 빚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건주 기자

이날 다양했던 우리술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1909년 일본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주세법을 제정하고 1916년 주세령을 시행, 1917년 가양주 제조를 전면 금지하며 우리 전통주의 명맥이 대다수 소실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차례상에 사용하는 정종은 일본의 브랜드 중 하나로, 제품이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보통명사가 됐다는 것이다.

권 부장은 “우리나라는 각 가정에서 정성스럽게 직접 빚은 술로 차례를 지내는 전통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주세정책과 1960년대 양곡관리법의 영향으로 사라졌다”며 “일제강점기 일본이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일본식 청주를 들여오고 술 빚기를 금지시켜 우리술이 점점 사라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남겨진 우리술은 600여종이었으나 소주·양주 등이 자리잡아 우리술은 80년만에 자취를 감췄다”며 “국순당에서도 고려시대 대표주인 ‘백하주’ 제조방법을 복원했지만 전통주는 숙취가 심하다는 편견 등으로 활성화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국순당 관계자는 “술은 나라의 식문화하고도 굉장히 연관이 깊다”며 “일본식 청주가 회와 어울리고, 우리술이 전과 어울리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집에서 김장을 하거나 장을 담근 것처럼 차례주도 가정마다 내려오던 하나의 문화”라며 “현재 국내에서 막걸리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
김건주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