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12‧3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무회의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전달한 ‘비상입법기구 쪽지’에 대해 "내가 썼는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윤 대통령의 영장심사를 맡은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5분간 최후진술을 한 윤 대통령에게 ‘비상입법기구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계엄 선포 이후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할 의도가 있었냐’고 묻자 이 같이 답했다고 한다. 이 질문은 차 부장판사가 영장심사 중 윤 대통령에게 직접 던진 유일한 질문이었다.
비상입법기구는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전달한 쪽지에 담긴 내용이다. 쪽지에는 ‘조속한 시일 내에 예비비를 확보할 것’과 ‘국회 관련 각종 자금을 끊으며 국가 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적혀있었다. 계엄 정국에서 국회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별도의 입법기구를 만들어 통치하기 위한 사전 준비로 해석될 수 있는 지시 내용이다.
이 쪽지는 12·3 비상계엄이 위헌적 국회 해산을 목적으로 했다는 핵심 증거로, 검찰 측은 국헌 문란의 목적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정황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 대행은 지난해 12월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며 이 쪽지를 제출했다.
윤 대통령은 차 부장판사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 "(쪽지는) 김 전 장관이 쓴 것인지, 내가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며 "비상입법기구를 제대로 할 생각은 없었다"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그는 "정말로 계엄을 할 생각이었으면 이런 식으로 대충 선포하고 국회에서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다고 순순히 응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도 김 전 장관의 공소장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후 최 권한대행에게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 충분히 확보해 보고할 것,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지원금·임금 등 현재 운용 중인 자금을 포함해 완전 차단할 것, 국가 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등이 기재된 문건을 건넸다고 적시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총을 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자신으로부터 받았다는 군 지휘부의 진술에 대해서도 "내 수사 경험에 비춰보면 이들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령관들이 본인의 법적 책임을 축소·회피하게 위해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