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등 국제기구가 전망한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의 2025년’이 밝았다. 정확히 말하면, 당초 전망보다 다소 빠른 지난해 12월 말 우리 사회 고령화율은 20.026%를 기록해 어쨌든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은 현실이 됐다(행정안전부 인구통계조사). 사람들은 2025년 을사년이 ‘변화와 지혜의 상징이라는 청사(靑蛇; 푸른 뱀)의 해’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지만, 한때나마 장기요양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장기요양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 걱정과 고뇌가 깊어진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대한민국 사회가 초고령사회를 맞았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또 장기요양에 대해 긍정적인 변화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도 어려울 것 같다. ‘고령자 부양의 가족 부담을 줄이고, 국가·사회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2008년에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한 지 17년 차에 접어드는 현재까지 정부와 정치권의 어떠한 괄목할 만한 관심과 노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한국노인복지중앙회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한국노인복지중앙회 70년사」를 보면, 대한민국 노인복지사업의 핵심 주체는 민간, 더 정확하게는 비영리 사회복지법인시설 및 종사자들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말부터 설립·운영되기 시작한 노인복지시설이 ‘사회적(社會的) 효(孝) 실천’이라는 노인복지의 숭고한 이상을 실현하는 동안 정부는 늘 뒷전에 있었다. “한국전쟁과 혁명, 민주화 등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눈감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새천년 이후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도 중앙과 지방의 몇 푼 안 되는 보조금 지원 외에 노인복지정책을 마치 남의 일인 양 관심 밖에 두어온 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어찌 설명할 것인가? 보조금 지원 등으로 잠시나마 노인복지시설의 운영에 활력을 불어넣은 공(功)이 있다 치자! 그것도 거기까지였다.
반세기가 넘도록 노인복지 정책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조차 없던 정부가 노인복지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무 강화’를 구실로 2008년에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모든 것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맡긴 채 자치단체와 함께 뒤로 물러나 ‘국가의 책무 강화’는커녕 제도 운영·관리와 관련해 무책임(無責任)의 극치(極致)를 보여줬을 뿐이다. 그뿐인가? 노인복지법인시설에 대한 알량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한 것은 물론 ‘장기요양보험 적용’을 이유로 승급·승진 및 호봉제 등 시설 종사자에 대한 인사제도까지 ‘적용 제외’ 영역으로 처리하여 종사자 처우의 급격한 악화를 초래했다.
게다가 장기요양제도의 핵심 운영기관인 장기요양위원회에 민노총·한노총 대표를 가입자측 위원으로 참여시켜 공급자측과 대립하게 하여 공급자측이 주장해 온 ‘종사자 처우개선을 위한 수가(受價) 인상(引上) 요구’를 ‘손 안 대고 코 푸는’ 효율적인(?)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이러한 결과로 오늘까지 종사자의 최저임금 수준 급여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오죽하면 “15년 근속자(勤續者)와 신입직원 간 급여 차이가 10만원?”이라는 자조(自嘲) 섞인 탄식(歎息)까지 나오겠는가? 가슴 답답할 일은 또 있다. 같은 사회복지종사자인데, 유독 장기요양계는 ‘승진·승급 및 호봉제 적용 제외’ 영역으로 지정되어 차별적 대우에 종사자들은 한 마디로 ‘마(음의)상(처)’의 고통을 받고 있으며, 종사자의 처우는 천 길 아래 낭떠러지로 곤두박질했다. 결국 장기요양계는 젊은 층 복지인력의 외면까지 받아 노노(老老)케어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며, 존폐(存廢)의 기로(岐路)에까지 내몰린 실정이다.
또 있다. 2008년 제도 도입 당시 부족한 인력 및 시설의 문제를 시급히 해소하고자 영리(榮利) 개인사업자들에게까지 문호(門戶)를 개방(開放)해 노인복지시설 종사자들 사이에 신조(信條)처럼 여겨져 오던 “복지(福祉)는 사업(事業)이 아니다”라는 금언(金言)도 무너졌다. 게다가 이익창출을 위한 개인사업자들의 다양한 불법·부정행위에 대응하면서 제도를 유지하려는 건보공단은 온갖 기발한 규제 지침을 양산해 노인복지시설 종사자들의 불만과 어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인력배치 기준’, ‘월기준 근무시간’, ‘고유업무 기준’ 등으로 시설과 종사자들을 옥죄며,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현지조사와 환수(還收)’로 경제적 부담까지 가중시키고 있다. 공단은 “다양해지는 요보호자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라”면서도 다양한 ‘역량 강화’ 교육을 ‘연간 16시간으로 제한’할 뿐만 아니라 이를 초과해 교육에 참여하려면 공단의 허가를 받도록 통제하고 있다.
그러면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많은 종사자가 분노하는 부분이 이 지점이다. 재산을 헌납하면서까지 노인복지법인을 만들어 노인복지사업을 해 온 많은 장기요양인들은 “운영을 포기하고 싶은 정도”라고까지 말한다. 국회회의록시스템을 보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도입 직전인 2006년 하반기 법률제정 및 정책방향 등의 점검을 위한 공청회가 국회에서 개최된 이후 16년이 지난 오늘까지 제도의 점검 및 발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공청회가 단 한 차례도 열린 바가 없다. 이런 상황이니 정부와 정치권에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개선 대책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 정도로 그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제도의 태생적·내재적 한계와 문제점이 한둘이 아닌 데도 이를 수정·보완해 제도의 본류(本流)를 유지(維持)·발전(發展)시키려는 노력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그보다는 각종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나 선심성 정책의 성격이 농후한 정책 제안을 받아들여 그러잖아도 어려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백척간두(百尺竿頭)·풍전등화(風前燈火)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요양병원 간병비(看病費) 급여화, 보험사 등 대기업의 요양시설 임차 운영 허용 요구, 요양시설의 공공성 강화 주장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 UN 등 국제기구가 ‘2025년에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설득력 있게 제기하면서 우리에게 경종(警鐘)을 울려온 까닭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고령화율 증가로 인해 초래될 사회문화적·정치경제적 환경변화에 능동적·선제적으로 대응해 국가·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라는 주문(注文) 또는 훈수(訓手)일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나? 정부와 정치권은 초고령사회를 위한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올 초 여러 언론은 ‘치매에 걸린 70대 아내를 자녀들의 외면 속에 4년 동안 간호해 오다 살해해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형을 확정받은 80대 남편의 안타까운 사연’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이들 노부부에게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존재를 제대로 알리기만 했더라면……. 그랬다면 과연 그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을까? 건보공단은 지난 2022년에 ‘전 국민의 88.5%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인지하고 있다’는 설문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노인복지중앙회가 지난해 8월경 국회와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건강보험료 고지서에 장기요양보험료가 함께 부과되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고작 55.3%만이 ‘알고 있다’고 응답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내용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시급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2025년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은 ‘노인이 건강한 사회’, ‘노인이 일하는 사회’, ‘노인이 보살핌을 받는 사회’로 재편되어야 한다. 그동안 노인의 ‘건강’과 ‘일자리’ 대책은 다양한 연구와 실질적 정책대안으로 뒷받침되어 시행되었다. 그러나 ‘노인이 보살핌을 받는 사회’라는 전략과 관련해서는 불모지(不毛地)나 다름없다.
장기요양계에 몸 담아 온 노인복지시설과 종사자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남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랜 기간 헌신해 온 ‘사회적 효의 실천’이라는 숭고한 이상을 중단 없이 이어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노노(老老)케어라는 상징적 용어가 시사하듯 고령 종사자들이 더 이상 힘에 부쳐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결국에는 문을 닫는 것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극단적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장이라도 국회 차원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대한 총체적 점검을 위한 공청회가 개최되어 개선책을 도모하는 등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를 토대로 다음의 몇 가지 현안에 중점을 두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 범국민적 관심을 결집시켜 새로운 노인복지의 장(場)을 펼쳐야 한다.
첫째, 국회 차원의 ‘제도개선 공청회’를 통해 제도의 직·간접적 문제요인 및 개선방안을 도출해 추진해야 한다.
둘째, 정부, 지자체, 주요 방송사 등이 협력해 제도의 취지 및 내용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셋째, 최저임금이 아닌 실질 생활급이 보장되도록 종사자의 급여수준 개편을 위한 사회적(社會的) 합의(合意) 도출에 착수해야 하며, 이와 함께 종사자의 사기진작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시행해야 한다.
넷째, 장기요양계 내외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장기요양시설 내 직·간접인력 구분을 폐지하고, 사회복지 종사자 간 ‘호봉제와 승진·승급 차별’ 철폐와 함께 장기요양기관 종사자들에게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도록 추진해야 한다.
결론에 갈음하여 한마디로 본격적인 초고령사회가 시작되는 2025년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원년(元年)으로 삼아 ‘노인이 제대로 보살핌을 받는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전략과 핵심 정책과제를 다시 세워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살리는 첩경(捷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