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휴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1월 28일 연합뉴스의 질의에 대해 보내온 답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집권 1기 때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휴스 대변인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였으며, 그(트럼프)는 강인함과 외교를 조합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사상 첫 (북미) 정상급에서의 공약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2018년 6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첫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한다”라는 문장이 포함된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대신 ‘부분적 비핵화’ 방안을 갖고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을 시도함으로써 회담이 결렬됐다.
이후 김정은은 미국과의 협상에 회의적인 태도로 바뀌었고, 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하고도 재개하자 미국과의 협상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
그리고 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증산하면서 대남 핵 공격 훈련을 진행하며,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그 결과 2018년과 2019년에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였지만, 북한의 핵무장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
이같은 상황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다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겠다고 하면 결국 바이든 행정부처럼 북한과의 협상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은 2024년 5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가망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생각해야 하는 대북정책 목표는 군비 통제와 비슷한 것으로 특히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사거리를 제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 본토를 대규모로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능력이 판도를 바꾸고 있으며 그게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도를 약화하기 때문이다.”라고 정당화했다.
1월 29일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의 핵물질생산기지와 핵무기연구소 현지지도 사실을 보도하면서 “무기급 핵물질 생산계획을 초과 수행하고 나라의 핵방패를 강화하는 데서 획기적인 성과를 이룩하여야 한다”는 김정은의 발언을 공개했다.
북한 보도에 의하면, 김정은은 “세계적으로 가장 불안정하며 가장 간악한 적대국들과의 장기적인 대결이 불가피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안전환경은 … 핵방패의 부단한 강화를 필수불가결로 제기한다”고 하면서 “우리 국가의 핵대응 태세를 한계를 모르게 진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이처럼 핵능력을 무제한적으로 강화하겠다는 비타협적 입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협상을 재개하자고 제안하면 김정은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을 원한다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하면서도 김정은에게 북한 핵능력의 일부만 다루는 핵군축 협상과 같은 ‘스몰딜(small deal·소규모 합의)’을 제안해야 할 것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북한과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 우선적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런 ‘스몰딜’은 북한의 핵무기를 그대로 놔둔 채 다른 핵능력만을 제한할 뿐이며 그것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에 대한 합의가 없는 ‘스몰딜’은 현실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와 모순 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과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모순 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일인 지난 1월 20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현실로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용한 ‘nuclear power’라는 용어는 NPT 체제 밖에서 핵무장에 성공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사실상의 핵보유국’까지 지칭하는 표현했다.
트럼프는 2024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직 수락 연설에서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 “우리가 재집권하면 나는 그(김정은)와 잘 지낼 것”이라고 발언했는데, 이같은 발언에서도 북한을 반드시 비핵화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북한이 미국과의 군비통제 협상에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데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으로 간주하고 있고, 트럼프도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엄청난 예산 낭비라는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김정은이 북미정상외교에 응할 경우 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다면 김정은이 다시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
북미정상외교가 재개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한국의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핵무기는 그대로 두고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되는 북한 ICBM의 사거리 제한 같은 문제만 가지고 김정은과 논의하려 할 수 있다.
그리고 김정은은 이에 협조하는 대신 한미연합훈련의 완전 중단과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일부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에 한국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폐기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우리도 핵을 포기하겠다는 ‘조건부 핵무장론’의 입장을 가지고 자체 핵보유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한국에 대해서도 그때까지 ‘핵보유국’으로 남아 있는는 것을 용인해달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양립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상호 모순 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와 사회는 미 행정부에서 나오는 모순된 목소리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통해 남북 핵 균형이 이루어지면,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면서 ICBM 사거리 제한 등을 목표로 북한과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고, 대중 견제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미 행정부를 지속적으로 설득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