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수다 떨면서 한파 견뎌요”…쪽방촌 ‘동행목욕탕’ [가봤더니]

“먹고 수다 떨면서 한파 견뎌요”…쪽방촌 ‘동행목욕탕’ [가봤더니]

기사승인 2025-02-14 06:00:08 업데이트 2025-02-14 13:24:13
서울 용산구 후암동 ‘은전사우나’ 방문자 기록. 이예솔 기자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분 지난 11일 저녁. 서울 용산구 후암동 ‘은전사우나’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욕탕인 듯하지만, 확실히 여느 목욕탕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방 한 칸에는 밥솥과 식탁이, 다른 방 한 칸에는 이불이 겹겹이 쌓여 있다. 잠옷을 입은 여성들은 큰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수다를 떨다가 수면실로 걸음을 옮겼다.

은전사우나는 쪽방촌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여겨진다. 단순 목욕탕의 역할에서 나아가 주민끼리 이어주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창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은전사우나를 운영하는 장정순(71)씨는 “치매에 걸린 분이 있었는데, 말을 어눌하게 하셨었다”며 “매일 와서 같이 밥을 먹고 수다를 떠시더니 이제는 증상이 많이 좋아지셨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개인적인 공간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방을 쪼개 만들었다.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선 선반까지 붙여가며 구매했다. 서울시의 지원이 아닌 사비로 구매한 것이다. 쪽방촌 주민들을 생각하는 사장님의 마음은 주민들의 입소문을 탄 모양새다. 방문자를 기록한 노트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빼곡하게 숫자가 적혀 있다.

단골도 있다. 신모(80)씨는 매일 이곳을 방문한다. 그는 수십 년째 쪽방에 혼자 거주하면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복덕방이나 공원에 가도 마찬가지다. 신씨는 그간 6개월 동안 추워도, 더워도 하루에 한 번은 꼭 목욕탕을 왔다.

은전사우나 내부 모습. 이예솔 기자

이 방에 모인 쪽방 주민들은 모두 언니·동생 사이다. 장씨는 “밥 먹는 시간에 오면 같이 밥을 먹는다. 신씨처럼 하루에 한 번은 와야 한다는 생각에 출석을 찍는 분도 많다”며 “처음에는 동행목욕탕을 안 하려고 했는데 시작해 보니 하길 잘했다. 주민들이 밤에 와서 목욕하며 서로 수다 떨고 친해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은전사우나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밤추위 대피소’다. 시는 야간 한파 쉼터 5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서울시가 한미그룹의 지원을 받아 쪽방촌 주민들의 목욕탕 이용을 돕는 ‘동행목욕탕’ 사업의 연장선이다. 동행목욕탕은 돈의동 쪽방촌 2곳, 창신동 쪽방촌 1곳, 남대문쪽방촌 2곳, 서울역 쪽방촌 2곳, 영등포 쪽방촌 1곳으로 총 8곳이다.

전익형 서울역쪽방상담소 실장은 “쪽방 주민 800여명 중 여성 주민은 100명도 되지 않는다”며 “서울역 쪽방촌에 거주하는 남성 주민들은 가까운 중구 남대문사우나나 하남사우나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무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수다 떨고 외로움을 해소하러 많이 가신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올해 동행목욕탕을 활용한 밤추위 대피소를 지난해보다 1개소 늘어난 5개소 운영한다. 이용 기간 또한 60일에서 90일(3월15일까지)로 확대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동행식당과 동행목욕탕 이용 과정에서 주민끼리 돌봄 관계가 형성되는 점을 고려해 돌봄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예솔 기자, 김다인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
김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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