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최대 규모로 유상증자를 진행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유상증자 당위성 미흡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앞서 해당 유상증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기조에서 정반대로 선회했기 때문에 시장 비판을 인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27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출한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번 정정 요청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지 5거래일 만이다.
앞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3조6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지난 1999년 이후 처음 진행하는 역대 최대 규모 유상증자인 점에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해외 지상 방산, 조선해양, 해양 방산 거점을 확보해 글로벌 방산, 조선·해양, 우주항공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금감원은 투자판단에 필요한 중요정보의 충실한 기재 여부 등을 살피는 중점심사를 진행하겠다고 공지했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신고서 정정요구 이유에 대해 “중점심사절차에 따라 대면협의 등을 통해 면밀히 심사한 결과 유상증자 당위성, 주주소통 절차, 자금사용 목적 등에서 투자자의 합리적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 기재가 미흡하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정정요구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같은 정정요구는 금감원의 입장이 정반대로 선회했다는 평가를 불러온다. 당초 금감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증권신고를 제출한 당일 “보호무역주의 경향 강화 등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회사가 ’K-방산‘의 선도적 지위 구축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한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상장기업이 유상증자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직후 금융당국에서 곧바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이례적인 사례다. 또한 금감원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추진되는 유상증자라고 짚으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적극 소통해 증권신고서 작성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중점심사가 무난하게 통과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금감원이 입장 선회 이유는 시장 비판을 인식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투자업계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기업 성장력 제고를 위한 투자 판단이 필요한 시점은 분명하다고 짚었으나, 현금흐름과 신용등급이 양호한데도 별개의 선택지를 외면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변용진 iM증권 연구원은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고 납득 가능하더라도 대규모의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달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라며 “투자계획이 오는 2030년까지 5년이라는 기간을 감안했을 때 향후 유입될 현금에 더해 회사채 발행도 적정 규모로 병행했다면 유증 규모를 줄일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진단했다.
이지호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중장기 사업의 지속성 측면에서 필수적인 선제 투자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이번에 조달된 자금을 통한 연간 투자 목표액은 한 해에 2조원을 초과하지 않는다. 연간 영업이익이 2조원을 웃도는 만큼, 이익체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지배구조와 자본시장 이슈에 대해 논평을 내놓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역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영진과 이사회에 “자본시장의 생명은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과 공정성(Fairness)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사회는 지난 2월 회사가 1조3000억원을 투입한 패밀리 소유 관계사 한화오션 지분 인수 건을 승인했다”라며 “불과 한 달 만에 13%의 주식 희석화가 예상되는 대규모 유상증자 강행시 일반주주들의 피해를 고려했는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금감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정정신고서를 제출하면 정정요구 사항이 충실히 반영됐는지 면밀히 심사하겠다고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정정 요청을 받고도 3개월 이내에 증권신고서를 다시 내지 않으면, 자본시장법에 따라 유상증자는 철회된 것으로 간주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금감원 요청 사항에 성실히 답변하겠다는 입장이다.